쓰레기를 주워도 행복해요
조 왕 래
아차산(285m)에서 쓰레기를 줍는 사람을 만났다. 아차산은 서울시 광진구와 경기도 구리시를 경계로 길게 뻗어있는 산이다. 서울둘레길 제2코스(용마~아차산)를 품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낙타 등처럼 높낮이가 있지만 비교적 평탄한 등산 코스다. 매년 새해아침에는 광진구에서 제공하는 새해 해맞이 떡국 나눠먹기 행사로 입소문이 크게 난 산이기도 하다. 아차산을 오르는 길은 다양하게 많지만 나는 집에서 가까운 지하철 5호선 광나루역 1번 출구에서 시작하는 정통 서울둘레길 코스를 즐겨 이용한다.
도시에서 가깝고 나지막하여 오르기 쉬운 산이다 보니 하루에도 몇 천 명의 등산객이 찾아온다. 그런데 휴지조각 하나 찾기 어려울 정도로 산이 깨끗함에 우선 놀란다. 관리사무소 직원들의 청소 등 철저한 관리가 있었겠지만 오늘 우연히 쓰레기 줍는 시민을 만나면서 그간의 의문이 다소나마 풀렸다. 휴일도 아닌 평일 날 등산객이 버리거나 흘린 쓰레기를 땀을 뻘뻘 흘리며 줍고 있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산에서 쓰레기를 줍다니 도대체 어떤 사람이고 동기가 뭔지 궁금했다.
그를 만난 날은 2월 27일(화요일) 오전10시경이었는데. 벌써 쓰레기봉투의 밑바닥이 쓰레기로 채워져 있다. 먼저 관리소 직원이냐고 물어봤다. 아니란다. 나이와 직업을 물어보니 61년생이며 직업은 종로에서 과학실 실험기구를 납품하는 장사꾼이라고 본인을 소개한다. 그런데 어떻게 평일에 산에 올수 있느냐고 재차 묻자 일주일에 3일(화,목,토요일)만 산에 와서 쓰레기를 줍고 월,수,금요일은 회사로 출근하고 있다고 한다. 종업원이 30명 정도 되는데 사장이 없어도 직원들이 각자 자기가 많은 일을 성실히 하므로 사장이 없어도 스스로 굴러간다고 함박웃음을 터트린다.
궁금증이 증폭됐다. 직원이 30명이나 되는 회사의 사장이 근무시간인 평일에 산에 올라 쓰레기를 줍는다? ‘세상에 이런 일이’ 라는 프로에 나올법한 말이다. 특별한 사연이 있을 것 같아 그 이유를 물어봤다. 그는 갑자기 표정이 굳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줬다.
그는 어느 날 뇌경색이 와서 모대학병원에 입원을 했다고 한다. 뇌수술이 위험하고 어려워 치료방법으로 처음에는 혈전용해제를 투여하여 혈전을 녹여보려고 했고 다음에는 혈압을 올려 강제로 혈관 관통을 시도했는데 별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더 이상 병은 진행하지도 않고 나아지지도 않는 하루하루의 지루한 투병생활이 이어지자 의사가 더 이상 해불 것이 없으니 퇴원하라고 말했단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살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손때고 지금까지 해오던 모든 것을 반대로 하라고 말했다. 돈을 버는 삶이었으면 돈을 쓰는 삶을 살고 남을 울렸으면 남을 웃기는 삶을 살라는 말이다.
치료를 중단하고 지금까지 해오던 생활습관을 바꾸는 그런 소극적인 삶은 싫었다. 뇌경색이 있는 상태여서 말도 어눌하고 행동도 굼뜬데 이 상태로 불안해서 살 수는 없었다. 병을 고치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워 입소문이 난 용하다는 병원을 전전했다. 열심히 재활치료로 노력한 덕분에 몸이 점점 정상을 찾아갔다.
“뇌경색부분은 좋아졌습니까?”하고 묻자 그런 것은 아니고 재활치료 덕분으로 신체의 균형 감각이 좋아지면서 걷기도 바르게 되었다고 한다. 몸 상태가 다소 호전되자 의사가 불규칙적으로 들이나 산을 걸어 다녀 보라고 권했다. 그래서 집에서 가까운 아차산을 오르기 시작했고 몸은 점차 좋아졌지만 실제 뇌경색부분은 막혀있는 그대로 있다고 한다. 신기한 것은 말하는 것은 거의 원상태로 돌아왔는데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불러보니 음정박자가 제멋대로인 완전히 음치가 되어있더라고 웃으며 말한다.
스트레스가 병을 만든다는 것은 많이도 들어본 말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가 병을 만드는지는 잘 모른다. 궁금해서 회사에서 무슨 스트레스가 있어서 몸까지 망가지게 되었느냐고 묻자 회사가 취급하는 판매 품목이 3천여가지가 되는데 이를 고객이 찾아보기 쉽게 책으로 편집하는 작업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직원들보다 자신이 판매 품목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틈틈이 혼자하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에서 혼자 남아 일을 시작 했다고 한다. 책임감이 강한 성격이다 보니 야간에 오는 잠을 쫓으려고 믹스커피를 자주 마시면서 고군분투했는데 지나고 보니 충분한 수면부족이 뇌경색의 원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산에 다니면서 몸이 좋아지자 그냥 산에만 다닐 것이 아니라 이왕이면 산에 쓰레기까지 주워 오면 좋지 않을까하여 줍기 시작했다고 한다. ‘도랑치고, 가재잡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산행하고 쓰레기 줍고‘다. ‘티끌모아 태산’ 이라고 산에 오를 때마다 한 자루씩 쓰레기를 주어서 산 아래 관리사무실에 갖다 준다고 말한다.
쓰레기 줍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나 하기 어려운 일이다. 아픈 몸의 운동을 위해 산행을 하면서도 뭔가 보람을 찾으려는 당신에게 박수를 보낸다고 박수를 쳐주었다. “아니 저 말고 쓰레기 줍는 사람이 또 있어요.”하며 쑥스러워한다.
그러고 보니 소방관으로 정년퇴직한 H 씨가 떠오른다. 이분도 같이 산행을 해보면 산에 있는 쓰레기란 쓰레기는 다 줍는다. H씨도 위암 수술을 한 사람이어서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매일을 감사하며 살고 있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함께 등산을 갔는데 벼랑 끝 나무에 누가 버린 휴지가 걸려서 펄럭이고 있었다. 이를 줍는다고 등산용 스틱으로 낚아채려고 했지만 제대로 안되자 몸을 더 아래로 숙이기 위해 나보고 자기 손을 잡아 달라고 했다. 지반이 무른 땅이라 어떤 위험이 있을지도 모르는 곳이다. 위험한 일을 하지 말라고 내가 소리를 지르자 내 도움을 포기하고 멀리 돌아서 밑으로 내려가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쓰레기를 주어왔다. 참 대단한 사람이다.
산에서 쓰레기를 줍는 일은 평지에서 줍는 것보다 위험성이 더 크다. 더구나 운반도 쉽지 않고 비를 맞아 축축해진 쓰레기는 옷이나 등산 배낭을 더럽히게도 된다. 쓰레기 줍는 일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사실 아무나 하기 어려운 일이다. 쉽게 성과를 올리는 것보다. 어려운 고생을 하여 성과를 올리는 것이 성취감이 더 크다. ‘누가 나를 위로해주나?’ 하고 고개를 길게 뽑아 기다리는 것보다. 남을 기분 좋게 할 그 무엇을 찾아 실천한다면 스스로 위로를 받으며 행복한 삶을 영위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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