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질이 나도 침 한번 꿀꺽 삼키자
조 왕 래
대부분의 사건사고의 출발은 아주 미미한 접점에서 시작된다. 앞차의 멈칫거림을 못 참아 경적을 울리고 그 경적소리가 나를 무시했다고 욱하는 성질이 폭발한다. 언성 높혀 삿대질까지 하게 되고 결국 폭행사건으로 발전한다. 결과는 서로에게 상처만 남는다. 법정에 서고 벌금을 물고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결국 망신을 당한다. 지난 뒤에 땅을 치고 후회해 봐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확실한 통계는 없지만 느낌으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참을성이 예전보다 줄어든 것이 아닌가 한다. 그 이유로 점점 심해지는 경쟁사회 구조다. 남들보다 빨리 먼저 선점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강박관념에 한 순간도 멈출 수 없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빨리빨리 조급증에 걸려있다. 빨리 가봐야 거기서 거긴데도 일단 남들보다 빨라야한다. 세상의 모든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은 열림 버튼보다 하도 많이 눌러서 표시마크가 거의 지워져 있다. 가만히 있어도 정해진 시간에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데도 그 몇 십초를 참지 못하고 눌러댄다.
교육에도 문제가 있다. 얼마 전 아침에 내가 본 광경이다. 오토바이로 우유 배달하는 아저씨의 초등학교 1~2학년 정도의 딸이 등교 길에서 아버지를 봤다. 반가운 마음에 “아빠”하고 길을 가로질러 아빠에게 달려왔다. 아버지는 순간적으로 좌우를 보지도 않고 길을 건너뛰는 딸이 혹 교통사고라도 날까봐 ‘막 뛰면 어떻게 해 좌우도 안보고’아주 큰소리로 야단을 쳤다. 등굣길에 아빠를 발견하고 반가워 뛰어간 딸의 심정도 이해가 가고 혹 사고날까봐 야단치는 아빠의 마음도 충분히 알겠다. 침 한번 꿀떡 삼키는 2~3초의 시간만 서로 참고 다음 행동이나 말을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학생들에게 “푸른 신호등 켜지면 건너도 좋다.”고만 가르친다. 주위 상황인식에 대한 고려가 없다. 이를 고쳐 “푸른 신호등이 켜지면 좌우를 살펴보고 안전하게 건너야 한다.”라고 가르치면 좌우를 살펴보는 여유로운 마음도 생긴다. 운전자를 위한 교양교육이 있다면 운전자에게도 횡당보도를 미쳐 다 건너지 못한 사람이 있나 좌우 확인을 하고 자동차를 출발시키라는 안내문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불과 2~3초면 확인이 가능한 시간이다. 침 한번 꿀떡 삼키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끝까지 기다리는 인내심을 기르는 교육이나 훈련도 필요하다. 방송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들에게 “청기 올려 백기 올려” 게임을 했다. 이게임의 성패는 말을 끝까지 들어야한다. 시키는 말에는 “청기 올려”도 있지만 “청기 올리지 말고 백기 올려”도 있다. 불행하게도 공부 못하는 그룹의 학생들은 청기라는 말만 나오면 청기를 올리는데 급급하여 감점을 당한다. 불과 1초 뒤의 말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침 한번 꿀꺽 삼키면 되는 짧은 시간이다. 질문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답을 하니 질문과 다른 답을 하게 되고 결국 맞을 확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참고 기다리면 좋은 결과가 있다는 본보기를 자주 보여주자. 우리 동네 생선구이와 찜을 하는 음식점이 있는데 이집은 벽면에 큼지막한 안내 문구가 걸려있다. 『우리 집은 고객이 주문하면 그때부터 요리를 하니 15분 이상 걸립니다. 고객에게 신선하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려는 우리의 정성이니 기다려 주세요. 』 이 글을 읽은 손님은 고개를 끄덕이고 아무런 불평 없이 잘 기다려준다. 이런 모습을 보고 우리가 선천적으로 조급증이 있는 국민이 아니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확실한 믿음을 주면 참고 기다린다.
나이가 들면 살아온 경륜이 많아 남을 이해하는 이해심이 커지 것 같은데 실제는 그렇지 못한 경우를 많이 본다. 상대방의 말의 전반부만 듣고도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할 것이라는 것을 지레짐작한다. 다 들어보지도 않고 말을 자르고 내 이야기가 정답이라고 말을 한다. 사건들은 진실을 해명할 틈을 주지 않고 억울하게 즉결처분을 당하는 일이 많다 한번 꿀꺽 삼킬 시간만 지체해도 오해는 줄어들고 나가는 말은 부드러워진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하게 방영되는 행동과 언어의 폭력성이다. 인터넷 게임은 더하다. 어린 시절 싸움에서 코피가 나거나 울면 승부가 끝난 것이었는데 요즘의 격투기는 눈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잔혹하다. 이런 모습을 자주 보게 되면 알게 모르게 행동에 반영이 된다. 예술 창작물이라는 미명하에 너무 관대하게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순간적으로 욱하는 교감 신경의 흥분이 있어도 교육을 통한 마음의 수양이 있으면 곧 부교감 신경의 자율운동으로 진정이 된다. 옛말에도 참을 인(忍)자 셋이면 살인을 면한다 했다. 그렇게 까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침 한번 삼키는 여유는 갖고 살자.
국내 모기업의 임원은 신입사원 채용 시 면접 마지막에 지금까지 한 말 중 바로잡거나 더 하고 싶은 말이 없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것이다. 불합격되어도 최선을 다했다는 마음을 갖고 응시생이 돌아가게 되면 그날은 편한 밤을 잘 것이다. 남들에게도 후회를 적게 남기는 삶을 살도록 기회를 주는 그 분이 참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하고 그 잘못을 고치려는 자정능력이 있다. 남의 잘못에 순간적으로 욱해서 덤비지 말고 침 한번 꿀꺽 삼키고 기다려주자. 그럴만한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이해심을 넓혀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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