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나잇값에 대한 소고

조왕래 2019. 9. 21. 19:05

나잇값에 대한 소고

조왕래

전철이나 버스를 타면 경로석이 있다. 경로석에서 나이 드신 분들이 서로 옥신각신하는 볼꼴 사나운 광경을 심심찮게 목격한다. 내가 나이를 더 먹었다는 것이 그래서 어른 대접을 받아야 하겠다는 논리가 싸움의 시작이다. 경로석은 정확히 말하면 노약자석이다. 임신을 한 아녀자나 나이는 젊지만 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사람도 앉을 권한이 있다. 경로석이 아니고 노약자석인데도 대부분 나이든 어르신은 경로석으로만 알고 자신의 안방처럼 나이 유세를 한다. 큰소리로 전화통화를 하면서고 다른 사람의 불편해하는 시선은 아예 안중에도 없다.

 

그래도 혼자 하는 행동은 귀를 막거나 고개를 돌려 참아주겠는데 나잇값을 하겠다고 덤벼드는 사람이 있다. 젊은 사람을 나무라고 충고할 나잇값이라는 기득권이 있다고 까지 생각하여 관계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콩 놔라 팥 놔라 참견을 한다. 그럴수록 젊은 사람들하고 점점 멀어지고 외로운 노년을 보내는데도 자신의 말이나 행동의 잘못은 통 알지 못한다.

 

우리사회는 연장자나 선배를 대접하는 경로문화가 아직은 남아있다. 있을 때 잘 하라는 말처럼 나잇값을 제대로 잘 써야 대접을 받는다. 대화나 논쟁을 하다가 이론적으로 수세에 몰리면 너 몇 살이야.’ 한술 더 떠서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어따 대고 두 눈 부릅뜨고 대들어!’ 라고 한다. 심한 말로는 너는 애비 어미도 없나!’ 까지 나간다. 내 나이가 너의 부모만큼 많다는 의미로 나에게 대드는 것은 너의 부모에게 대든 것처럼 패륜이라는 말이다. 이러다보니 원래 언쟁의 본질은 없어져 버리고 나이가 잘잘못의 기준이 되는 웃지 못 할 촌극을 연출한다. 젊은 사람과 나이든 사람의 언성이 높아지면 싸움 났다고 주위에 사람이 몰려든다. 싸움의 발단은 다 들어보지도 않고 젊은 사람이 나이든 사람에게 너무 하는구먼하는 눈총을 쏘아댄다. 아직까지는 경로사상이 남아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이런 경로사상은 몰지각한 나이든 사람들 때문에 설자리를 잃고 있어서 안타깝다. 윤리도덕보다 법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면 사소한 일도 경찰을 부른다. 경찰은 법을 집행하기 때문에 법 앞에는 나잇값이라는 권리금 같은 기득권이 없다. “나이든 어르신이 한 대 때렸기로서니 젊은이가 대들어!” 하는 법은 없다. 누가 먼저 욕했느냐 누가 먼저 때렸느냐를 따지고 쌍방폭행죄로 똑 같은 처벌을 받는다.

노년의 권위는 어디서 왔는가? 증자가 말하길  “朝廷莫如爵 조정막여작, 鄕黨莫如齒 향당막여치,輔世長民莫如德, 보세장민막여덕이라고 했다. 이 말은 조정에는 벼슬만 한 것이 없고 시골 마을에서는 나이만 한 것이 없고 세상을 돕고 백성을 잘 살게 하는 데는 덕()만 한 것이 없다.’라는 말이다. 나이도 벼슬처럼 인정받는 근거다. 수평적 평등사회가 아닌 나이를 매개로 하는 수직적 상하구조를 만드는데 나이가 힘을 발휘하는 시대가 과거에는 분명 있었다삼강오륜이 있고 이중 장유유서(長幼有序)는 집안에서는 형제의 차례를 말하고, 사회생활에서는 연장자와 연소자의 차례를 말한다.

   

원래 야생동물의 세계는 나이가 아니고 힘이 지배한다. 늙은 수사자는 새로운 젊은 사자를 힘으로 제압하지 못하면 대장이라는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힘이 벼슬이지 오래 살아 늙었다거나 예전에 내가 너희들을 보호해 줬다는 과거이야기는 동물의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은 다르다. 사람만이 부모를 공경하고 웃어른을 배려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나잇값이 있다. 장사가 잘되는 가게에만 권리금이 있는 것처럼 연장자다운 행동을 할 때만 나잇값이 있다.

 

우리는 처음 만나 통성명을 하고 나이를 물어 그럼 선배님으로 모시겠습니다.’하면서 스스로 위계질서를 만들어간다.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고 서로 옥신각신 할 때 제일 연장자가 그럼 이렇게 하지!’하고 정해주고 이를 승복하는 근거로 삼으면 아주 편하다올바른 인생경험이 많은 장유유서가 제대로 지켜지는 나잇값이 있는 인간 세상은 확실히 야생 동물들의 세상보다 는 다르고 질서가 있어 분쟁이 적고 화목할 것임은 틀림없다.    

    

자랄 때 형제간에 싸움을 하면 부모는 힘이 약한 동생 편을 드는데 이것이 잘못이란다. 형이 부모의 위력에 눌려 잠시 승복하는 체하는 것이지 속마음으로는 불만을 품고 씩씩대며 승복하지 않기 때문에 늘 위험성이 잠재되어있다. 결국 부모가 없을 때 기회는 이때다 하고 동생을 때리게 된다. 육아 전문가들이 말하길 형에게 우선권을 주어야 가정의 위계질서가 선다고 말 한다. 먹을 때도 형이 먼저고 좋은 것도 형이 먼저라는 것을 심어주면 자연히 형제간 분쟁은 없어지고 동생은 자신이 후순위라는 권력을 인정하고 기다린다. 대접을 받는 형은 승자의 아량으로 자기 먹을 것을 동생에게 스스로 양보하는 미덕을 보인다. 사자나 호랑이 같은 맹수의 세계에도 힘센 놈이 먼저 먹고 물러나면 약한 순서로 먹기 시작한다. 그래서 무리의 위계질서가 유지된다.    

    

이제는 민주주의 시대다. 모두가 성인이 되면 수직문화에서 수평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할아버지가 손자뻘 같은 놈을 교육측면에서 한 대 때리기라도 하면 폭행범으로 바로 입건이 되는 세상이다나이라는 벼슬은 이제 없어졌다. 사랑과 덕으로 더 젊은 사람을 대해야 한다. 어느 모임에서도 저 사람은 나이가 많으니 우리의 리더인 회장으로 뽑아야 한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 시골 동네에서도 젊은 사람이 이장으로 뽑히고 마을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리더의 역할을 하는데 젊으니까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아주 잘한다.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주머니는 열라고 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을 맞는 말이라고 맞장구를 치는 세상이 되었다. 도대체 돈을 낸 사람에게 말이라도 하게 해줘야 공평할 텐데 나이든 것이 무슨 죄라도 되는 것처럼 돈은 내고 입은 다물라고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손자손녀가 집에 오면 몇 푼이라도 집어 줄 수 있는 돈이 있어야 아이들이 웃으며 다가온다. 나잇값을 제대로 받는 길은 스스로 인품을 연마하여 광택이 나도록 값을 올리고 젊은이에게 군림하려는 생각을 아예 안하는 것이 나잇값을 제대로 받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