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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적 아지트의 추억
마을 뒷동산에 바위틈사이로 아늑한 공간이 있었다. 비를 안 맞게 바위위에다. 나무를 서까래 모양으로 배치하고 그 위에 가마니를 덮었다. 물론 맨 위에는 진흙을 올리고 농사용 비닐로 덮었다. 중학생 사춘기 우리 또래의 아지트였다. 그 속에서 먹을 것들을 갖고 와서 나눠 먹기도 하고 기타도 치고 유행가 가락도 불렀다. 아지트는 남들이 몰라야 하고 비바람을 막아주면 만족했다. 담배를 피우거나 폭력조직은 아니지만 부모님들에게 무조건 반항하던 우리 또래가 만나면 즐거웠다.
2, 아지트로서 집은 불안하다.
집에는 노트북이 한 대있다. 전적으로 내가 사용하지만 가끔은 자식들이 와서 이용하기도 한다. 해킹의 능력이 탁월한 아이들이 내가 사용한 금전출납부도 훔쳐보고 내 재산의 변동사항도 몰래 보는 것 같다. 테니스 여성 동호인들과 러브 샷 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들을 몰래 보기도 했다. 팬티 입은 모습을 들킨 것처럼 참 쑥스럽다. 한번은 내 딴에는 머리를 쓴다고 야동의 제목을 ‘건축학 개론’이라고 제목을 다르게 해서 보관했는데 아버지가 전원주택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열어본 모양이다. 내 컴퓨터에 접근금지를 소리 쳤지만 키득키득 웃는 소리만 들었다. 아내의 번득이는 눈초리도 늘 신경 쓰인다.
3, 사무실이 아지트로서는 최고의 보안장소다.
사무실에 내 전용 컴퓨터는 아무도 못 만진다. 나는 기술자로서 대민 업무에는 직접 관여를 하지 않으니 외부인이 내 컴퓨터에 접근 할 일도 없다. 정문에는 주야로 경비가 서고 출입문에는 CCTV가 설치되어 거짓말 좀 보태면 개미한마리가 들와도 얼굴이 다 찍힌다. 화재의 우려도 없고 도난의 염려도 없고 도청의 불안도 없다. 내 책상 서랍에는 저축통장이 나뒹굴어도 보는 사람이 없고 보자는 사람도 없다.
4, 아지트는 누구로부터도 간섭을 받지 않아야 한다.
동사무소에 가보면 휑하니 공개된 사무실이다. 그런 사무실은 아지트로서는 부적격이다. 독방 같은 나만의 사무실 공간이어야 한다. 내 책상위에는 아무도 정리를 못하게 한다. 어지럽게 종이쪽지가 널려있는 것 같지만 내 눈에 사진 찍히듯 찍혀있다. 누군가 만져서 자리이동이 있으면 금방 눈치 챈다. 공적인업무도 하지만 사적인 글도 쓰고 전화도 하고 의자를 뒤로 제켜 잠도 잔다. 나만의 아지트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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