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내가 만난 문화관광해설사

조왕래 2013. 5. 6. 17:59

 

내가 만난 문화관광해설사

지난 그 춥던 1월 어느 날 충남 당진시 송악읍 부곡리의 필경사(筆畊舍)를 찾았을 때는 늦은 시간이어서 그런지 문화관광해설사 없이 필경사를 혼자 관람했다. 필경사는 붓으로 밭을 일군다는 뜻으로 일제 강점기 심훈(청송 심 씨 본명: 심대섭) 선생이 1933년 “영원의미소”를 쓰고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장편소설 직녀성이 연재되면서 그 원고료로 받은 돈으로 그가 직접 설계하여 지은 문학의 산실이다.
 
선생은 이곳에서 1935년 장편소설 상록수를 52일 만에 탈고하였으며 이 소설은 동아일보 창설 15주년 문예작품 현상 모집에 당선되었다. 심훈 선생의 상록수하면 4H 운동과 안산의 상록수역, 야학 이런 것들이 오버랩 되었는데 당진의 필경사에서 심훈 선생의 체취를 느끼게 될지는 솔직히 몰랐다. 선생은 1936년 8월 1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 선수의 우승에 감격하여 “오 오 조선의 남아여”라는 즉흥시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장티푸스 감염으로 요절하였다.
 
그의 기념관에는 각종 기록사진과 원고지의 친필이 전시되고 있지만 생활 유품들이 적은 것이 흠이다. 나는 역사에 관심이 많고 남들로부터 맛깔나게 이야기를 잘 한다는 평을 많이 들었다. 내가 퇴직하면 문화관광해설사를 해보고 싶었다. 문화관광해설사란 관광 진흥법 제2조에서 정의하기를 “문화관광해설사란 관광객의 이해와 감상, 체험기회를 높이기 위하여 역사, 문화, 예술, 자연 등 관광자원 전반에 대한 전문적인 해설을 제공하는 자를 말한다.”

마음에 쏙 드는 말이다. 그런 욕심으로 관광지에 가면 해설사의 강의를 자주 경청한다. 혼자 하는 여행이 많다 보니 내가 직접 해설을 부탁하기에는 미안하여 다른 집단에 슬그머니 발을 들여놓고 함께 듣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해설을 들으면서 평소 내가 느끼는 감정은 해설자와 관람자 사이의 소통 부재를 많이 느꼈다.

해설을 처음 할 때는 10여 명이 되었는데 점차 흥미를 잃은 관람객이 줄어들어 나중에는 한두 명만 남는 경우도 보고 레코드판처럼 고객의 수준은 아랑곳하지 않은 똑같은 해설도 들었다. 관람객도 해설에 몰입하지 않고 대충 듣다 싫증 나면 가버리는 몰상식한 행동도 수없이 보고 해설 도중에 불쑥 질문을 하여 이야기의 맥을 끊는 수준 이하의 관람객도 있다.

문화관광해설사는 본래의 고귀한 뜻에도 자원봉사라는 한계와 해설은 무료라는 공짜 심리로 집중도가 떨어지는 것은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해설 전에 관람객의 수준이나 희망 사항을 눈치껏 파악하고 다음 관광을 위해 주어진 시간도 고려해서 해설을 하면 좋겠다. 관람객이 흥미 없어 하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장황히 설명하는 것도 곤란하고 번개 불에 콩 구어먹듯 대충 설명하고 스쳐가는 것도 문제다.
 
여하튼 관심이 있어서 찾아온 관람객이라는 걸 바탕에 두고 생각하면 개선 점을 찾기가 쉬울 것이다. 오늘 만난 필경사의 해설사는 중년의 여성으로 관람객은 나 혼자인데도 해설을 자청해 주셨다. 심훈의 인간적인 면과 가족가계도를 잘 알고 지금의 후손들 근황까지 소개해 주었다. 특이점은 정확하고 색다른 해설을 위해 상록수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 중 지금 살아있는 분을 직접 찾아가서 만나기도 했다는 데 감명을 받았다.
 
심훈과 당대에 같이 살았던 분들이 심훈을 평가한 것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정확히 나에게 해설하는 것은 내가 처음 겪는 색다른 열정이다. 우리는 과거를 보고 오늘을 진단하고 미래를 예측한다. 선각자의 삶을 통해 용기도 얻고 삶의 지혜도 얻는다. 심훈 선생님이 감옥에 있을 때 불원천리 찾아온 어머니와의 면회 장면을 들을 때는 속울음이 다 났다. 심훈 선생님의 글은 애국심이 바탕에 깔린 힘이 있다.
 
관람하는 시간은 짧았지만 해박한 지식으로 관람객을 몰입하게 하고 역사의 현장에 서게 한 필경사 해설사님에게 박수를 보낸다. 미국에서 살고 있다는 심훈 선생님의 자제분이 선생님의 유품을 소장하고 계시다고 하는데 이분도 연세가 높으시니 계속 보관이 어려울 것이다. 자칫 분실이라도 되면 큰일이다. 선생을 좋아하는 분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유가족의 선처가 있었으면 좋겠다.

끝에 내가 물어봤다. 교통이 불편한데 근무하기 어렵지 않느냐고 하니 운동 삼아 걸어서 버스 정거장까지 나가지만 비나 눈 오는 어려운 날은 남편이 차로 데리러 온다고 한다. 역시 가족의 힘이다. 흥미진진하게 우리의 문화 관광해설을 하는 모든 분이 건강하고 즐거웠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