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밭을 보고 억장이 무너져
도시의 옥탑방에 사는 사람들은 열대야에 고생한다. 옥탑방에 직접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환경인 5층 아파트 5층 꼭대기 층에 살아봐서 찜통의 더위 맛을 톡톡히 봤다. 한여름 강열한 태양에 달구어진 옥상의 열기가 밤만 되면 천정에서 뿜어져 내려오는데 참 견디기 어려웠다. 옥상에 물이라도 뿌려서 열기를 식혀 보기도 했지만 매일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에어컨도 없이 오직 선풍기 바람에만 의존하던 시절이었다. 뜨거운 몸을 식히는 길은 샤워를 하고 얼음냉수를 벌컥벌컥 마시는 길 뿐이었다. 가끔씩은 동네슈퍼로 뛰어가 아이스케이크나 하드 같은 빙과를 한보따리 사서 냉장고 냉동 칸에 넣었다가 꺼내 먹었다. 더위는 아이스케이크 먹는 동안만 피해 있다가 입에서 아이스케이크가 다 녹으면 또다시 더워지기 시작했다. 여름밤에 모기 때 덤벼들 듯 열대야 더위는 또 덤벼들었다. 이것이 내가 느낀 더위의 하이라이트는 도시에서만 느꼈다.
농촌에서 자란 나는 여름더위가 즐거운 추억으로만 남아있지 못 견딜 만큼의 고행의 일은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었지만 밥 먹을 때면 펌프질로 찬물을 한 주전자 길어 오면 끝이다. 더운 날은 금방 펌프질해서 담은 물주전자가 땀을 흘린다. 주전자 안은 차고 밖은 뜨거우니 결로 현상이 일어난다. 찬물에 밥을 말아 밭에서 금방 따온 풋고추나 오이를 된장에 찍어먹으면 꿀맛 같고 시원했다. 나무그늘 아래에 앉아 있으면 매미소리도 들리고 시원한 바람이 밤낮으로 불어왔고 나무가 내뿜는 천연 산소는 기분까지 맑게 했다. 덥거나 심심할 때는 동네 친구들 하고 저수지나 강 적절한 물깊이를 찾아 물속으로 자맥질을 하면 더위는 더 이상 접근을 못했다.
이번에 시골 가서 내가 겪은 여름날의 시골풍경이나 더위에 대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슬픔을 보고 왔다. 수박밭의 수박넝쿨이 모두 말라버린 모습이다. 이런 모습은 난생처음 봤다. 수박이 미처 영글고 익기도 전에 넝쿨이 말라 버리니 마치 어린 자식을 두고 먼저 저세상을 가야하는 영화의 슬픈 장면이 연상되었다. 노지(露地)에 심은 수박이라 햇볕을 가려줄 아무것도 없다. 그마나 신문지로 강렬한 태양빛을 막아본다고 수박주위를 농부가 덮어봤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로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노지 수박이 출하되어야 수박 값이 내려가고 도시 서민들도 경제적 부담을 덜 느끼고 여름의 과일인 수박을 제대로 맛본다. 마트에 갔더니 수박 한 덩이가 2만원을 넘는다. 비싸다고 느껴야 하는데 농촌의 수박밭을 직접 보고 온 후로는 오히려 싸게 느껴졌다
‘농림축산식품부’ 발표에 의하면 이번 더위로 닭이 448만3000마리. 오리 21만6000마리 돼지 1만9000마리가 이미 죽었다고 한다. 아직 더위가 끝나지 않았으니 피해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가뭄에 타버리고 말라버리고 썩어버리고 문드러져 버리는 벼, 수박, 채소를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은 오죽 하겠는가! 품삯은 고사하고 씨앗 값도 못 건진다고 하소연하는데 남의 일 같지 않다.
지구온난화로 이런 더위가 앞으로도 해마다 찾아 올 전망이다. 어떤 기상학자가 예상하길 우리나라 여름 중 며칠은 무려 50도까지 올라가는 날이 올 것이라고 한다. 하늘이 하는 일이어서 사람이 어쩔 수 없다고 손 놓고 재앙을 바라만 볼 것이 아니라 화석연료를 덜 소비하고 좀 덥게 춥게 살면서 지구를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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