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는 젊었을 때 대규모 주택건설사업을 진두지휘하던 토목기술자였다. 그의 말을 빌리면 수 천 수만 그루의 나무들이 사람들이 살 주거지를 위해 또는 사람들이 돌아다닐 도로공사를 위해서 목숨을 내어 놓았다고 한다. 오직 사람을 위해 대규모 벌목사업이 자행되었고 그 실행의 중심에 k가 있었다. k는 술자리에서 가끔 후회를 한다. 인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잘려나가는 나무들의 혼령을 위해 막걸리라도 한잔 올리면서 위령제(慰靈祭)라도 지내고 나무에 톱날을 들이댔어야 하는데 그냥 막무가내로 밀어 붙인 것을 후회한다. K는 나이가 들어서 마음이 약해진 탓도 있겠지만 아직 시집을 못간 노년의 딸을 보면 나무의 저주를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예부터 우리의 조상들은 ‘동티’라 하여 땅, 돌, 나무 따위를 잘못 건드려 지신(地神)을 화나게 하면 재앙을 받는다고 했다. 함부로 자연을 훼손하지 말라는 지혜가 담겨있다. 대표적인 자연환경이 나무다. 법으로도 나무를 훼손하는 벌목이나 벌채는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아주 옛날부터 위정자들의 덕목에 치산치수(治山治水)가 있었다. 어릴 적에도 산에 산간수(山看守)라 하여 산을 순회하며 벌목을 감시하는 직업이 있었다. 나무꾼이 산간수를 보면 도둑이 경찰을 만난 듯 겁에 질렸다.
어쩔 수 없이 나무를 배어야 할 때는 법적으로 벌목허가를 받아야 한다. 전통적으로도 베어지는 나무에 대해 고사(告祀)를 지내며 나무의 혼령을 위로했다. 궁궐에 쓸 큰 재목에 대해서는 “어명이요”하고 외친 후 도끼로 나무를 찍었다. 나무를 잘라야 하는 사람도 자의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왕명으로 하는 만큼 벌목공을 원망하거나 해코지를 하지 말라는 기원이 담겨져 있다. 동티를 무서워했다. 세상의 모든 생명 있는 것은 살기위해 노력하고 자신을 헤치는 모든 것에 저항한다. 큰 나무를 베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벼락을 치면서 나무배는 사람이 죽어버렸다는 이야기나 큰 나무, 큰 바위, 큰 물고기를 보면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무서움이 본능적으로 우리에게 있다. 실제 동티를 당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인류가 수 백 만년을 살아오면서 유전인자에 각인된 두려움이다.
과학적으로 살펴보아도 나무라하여 저항하지 않고 쉽게 목숨을 내놓지 않는다. 나무는 칼로탄닌이라는 물질을 뿌리가 분비하여 일정한 영역 안에서는 다른 식물이 거의 자라지 못하게 한다. 이런 식물들간의 저항관계를 알레로파시라 한다. 소나무 송진의 터펜스 같은 물질은 병원균의 침입을 막고 다른 식물의 접근을 막아낸다. 또 상처를 입으면 사람의 피와 같은 것이 흘러나와 굳어서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침투를 봉쇄한다. 소나무뿐만이 아니라 모든 나무들은 비슷한 방어기제를 가지고 있다.
나무도 자손을 번창시키려는 본능이 있다. 우거진 수풀 속에는 햇볕이 들지 않아 씨앗이 발아하지도 못하고 식물의 탄소동화작용이 불가능하여 키 작은 나무들은 자라지도 못한다. 하지만 큰 나무라하여도 병이 들면 무성하던 잎이 시들어 떨어지며 햇볕이 들어오고 씨앗이 발아된다. 소나무도 살아가는 환경이 열악해지면 소나무의 씨앗인 솔방울이 무성해진다. 나무도 스스로 죽는 다는 것을 알 정도로 영특하다.
위령제를 지내는 것은 내가 최고여서 당신 목숨을 뺏겠다는 통고가 아니라 나도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니 이해를 해달라는 의미가 있다. 나무의 생명이나 사람의 생명이나 오십보백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살아있는 생명은 존귀하고 살 가치가 있다. 자연보호는 우리의 삶의 한 축으로 세상의 모든 생명 있는 것에 대해 아니 자연의 모든 만물에 대해 경외심을 갖고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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