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예쁜 손녀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직접 그려서 선물이라고 불쑥 내민다. 그림속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실물과 너무 다르다. 그래도 ‘참 잘 그렸네!’ 하고 칭찬을 해주고 그림을 받지만 손녀가 그림 실력이 없어서 이렇게 그린 것인지 아니면 아이 눈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림에서 처럼 이렇게 보이는 것인지 궁금하다.
아이의 마음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그림을 그려보라 하고 그린 그림을 분석해서 지금 아이의 속마음을 읽기도 한다는 전문분야가 있다. 아버지가 미운 아이는 아버지를 멀리 띄어 놓기도 하고 힘센 사람은 크게 그리고 약한 자신은 아주 작게 그린다. 아이의 그림을 보고 아이의 마음을 읽으려면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일반인의 눈에는 비슷한 그림을 달리 해석하는 전문가의 능력을 보고 가끔은 탄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의 상태를 대충 귀동냥하고 아이의 그림을 봐서 그렇지 그냥 아이의 그림만 본다면 정확한 진단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은 있다. 오히려 아이의 그림을 보는 어른의 마음상태에 따라서 아이의 그림을 달리 해석하는 경우는 없는지 고개를 갸우뚱해 본다.
누구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훔쳐보고 싶은 충동은 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도 정말 나를 좋아하는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나 또한 예쁜 5살 손녀의 마음을 알고 싶어 한다. 때로는 할머니보다 할아버지를 더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때그때마다 카멜레온처럼 변덕이 심한 손녀의 마음이고 행동이다.
정말 손녀가 그리는 그림을 통해 손녀의 지금 마음 상태를 알 수 있을까! 손녀는 그림을 외워서 그리는 것처럼 거의 판박이 수준이다. 즐거워하는 모습이나 화가 났을 때의 모습을 그리기에는 아직은 그림 역량이 부족한 것 같다. 나도 그림을 공학적으로 그린다. 산을 그린다면 산을 그리고 산에다 나무를 그리고 산 위에 달님을 그리고 밑에는 초가집 한 채를 그려놓는다 언제나 그렇게 외워서 그렸다. 손녀도 나와 닮은 생각을 하는 것인가?
내가 손녀의 그림에 관심이 많은 것을 본 아들이 내게 묻는다. ‘아버지 저는 어릴 때 뭐를 주로 많이 그렸어요?’ 아들이 무슨 그림을 자주 그렸는지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 아들은 그림보다 책을 많이 읽은 것은 분명하다 아들은 늘 동화책이나 위인전을 가까이 했고 자신이 읽은 책의 줄거리를 나에게 이야기해주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초등학생 아들이 읽은 책의 내용을 설명해줄 때는 참으로 사랑스러웠다. 이야기 중간 중간에 ‘그래서 어떻게 됐지?’하는 추임새도 넣어주고 관심을 보여주면 아들은 신바람이 났다. 콩쥐팥쥐나 별님달님 이야기처럼 나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가 아들이 읽는 책의 대부분이다, 아들의 기억이 희미한 부분은 내가 전등 스위치 올리듯 살짝 건드려 주기만 해도 된다. 육아에 기본은 격려와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손녀가 그림에 소질이 있는지는 나는 모른다. 앞으로 어떤 길로 나갈지도 모르고 나의 관심 밖이다. 세부적인 것은 아들내외가 알아서 할 일이다. 나는 손녀의 행동을 지지해주고 관객의 입장에서 박수를 쳐주는 선에서 끝을 내려고 한다. ‘할아버지 선물’하고 내미는 손녀의 그림에서 손녀의 마음을 읽어보는 능력이 내게 생기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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