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손녀의 초등학교 운동회에 할아버지 할머니도 오시고 어머니 아버지도 오셔서 놀이 한마당을 펼칩니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목이 터지게 공책이나 연필을 부상으로 받았던 즐거운 추억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부모들이 다 바빠서 운동회 참석률도 떨어지고 크고 작은 안전사고들이 일어나고 법적 책임문제 운운 하다 보니 점점 시들해하다가 이제는 거의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아내의 초등학교 총동문회주최로 공설운동장을 빌려서 체육대회를 하는 날입니다. 전에는 학교운동장에서 했는데 졸업생이 늘어나다보니 좁아서 더 넓은 공설운동장을 이용합니다. 아내는 아침부터 무슨 옷을 입고갈까 부산을 떱니다. 함께 갈 친구들도 서로 전화해서 참석을 독려 합니다. 참석율을 높이기 위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매년 10월3일 개천절을 못 박아 둡니다. 시골의 초등학교는 아버지도 같은 학교 졸업생이고 오빠, 동생들도 같은 학교출신 동문입니다. 담임선생님도 오빠를 가르친 분이 동생도 가르친 경우도 허다합니다. 꼭 집안 잔칫날 같습니다.
기수별 동문회에서 총동문회에 몇 명 참석하겠다고 통보를 하면 거기에 맞춰 음식준비도 하고 텐트도 마련하고 나이 드신 분들이 할 수 있는 운동종목도 선택하는 모양입니다. 내 기억으로 아내의 졸업기수가 29회인데 그전에는 선배기수들이 많이들 참석했습니다. 아쉽게도 올해는 아내의 기수가 최고령 참가기수가 되었고 28회를 포함한 그 이전 기수는 연로하여 참석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면 옛날의 코 흘리게 아이로 돌아갑니다. 앞집뒷집에 살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말이 통하는 사람은 초등학교 동창이 유일합니다. 빈병, 헌 고무신 주고 엿 바꿔먹던 이야기도 재미있다고 깔깔됩니다. 누구 이름 부르며 ‘재가 우리 고무줄 칼로 많이 자른 애야’ 하고 흉도 봅니다. 그러나 그 때의 악동 남학생도 지금은 60이 넘은 할아버지입니다.
아내의 기수도 나이들이 많다보니 배구나 육상 등 이런 운동은 못하고 후배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관람하고 박수치고 격려하고 음식도 먹으며 담소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냅니다. 전에는 큰오빠 작은오빠 다 운동장에서 만났지만 올해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 내년에는 아내기수도 참석희망자가 급격히 줄어 참석 포기 까지도 고려하는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 보니 ‘마쯔리’라고 하는 마을 특유의 유사한 행사가 많이 있습니다. 남녀노소 한데 어울려 시가지 행사도 하고 혹 무슨 사고가 나지 않을까 일본경찰이 숨어서 지켜보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예전에 우리나라 시골에서도 농사와 관련된 여러 가지 기원과 놀이 행사가 많이 있었습니다. 점차 효율을 강조하다보니 허례허식의 굴레를 씌워 없애버린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귀족(양반)은 전통을 존중합니다. 집안의 고유의 음식과 예법을 존중합니다. 우리나라도 전통문화처럼 지켜 내려오는 각종행사가 경제논리에 한판 패를 당하지 말고 이어져왔으면 합니다. 보릿고개의 어려운 시절에도 풍악이 있었습니다. 이제 이만큼 살 정도의 경제력도 있는 국가이니 전통문화가 계속 이어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