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할아버지는 후순위

조왕래 2016. 3. 30. 09:24

 

6살 손녀가 과자를 먹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하나가 남았습니다. 더 먹기 싫은 모양입니다. 나와 아이 엄마인 며느리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이 과자 누구한테 줄까요? 손을 들어주세요.’ 깜찍하게 외쳤습니다. 손녀의 마음을 잘 모르는 할아버지인 내가 사태 판단을 잘 못하고 장난삼아 여기! 할아버지하고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손녀는 엄마가 손을 들면 엄마에게 주고 싶었는데 할아버지가 손을 드는 바람에 참 난처하게 되었습니다

    

엄마 빨리 손들어!’ 엄마도 손을 들게 만듭니다. 이제 가위, 바위, 보 로 결정하라고 합니다. 며느리가 할아버지가 먼저 손을 들었으니 할아버지 드려!‘ 라고 말해도 막무가내로 가위, 바위, 보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주먹을 내고 엄마는 보를 내라고 말 합니다. ‘그럼 할아버지가 지는데 그런 법이 어디 있어!’ 하니까 손녀가 깔깔대며 웃습니다. 6살 손녀도 불공정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 엄마에게 주고 싶은 마음 때문에 불공정 행위를 합니다.  

    

그럼 반 갈라서 엄마와 할아버지에게 한쪽씩 드려라고 며느리가 말하자 과자를 두 쪽으로 나누어 큰 쪽을 제 엄마를 줍니다. 할아버지는 후순위입니다. 이런 불공정을 당해도 손녀가 귀엽고 예쁩니다 손녀의 행동을 보면서 미움보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손녀에게 후순위로 밀려도 서운한 감정이라고는 추호도 없습니다. 불공정 행위를 해도 깨물어주고 싶도록 손녀 사랑에 온몸이 짜릿합니다.

    

어렸을 적 어머니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옛날 7살 손자가 잘 익은 감과 아직 덜 익어 떨어진 땡감 이렇게 두 개를 주어 와서 크고 잘 익은 감을 먼저 할아버지에게 갖다드립니다. 할아버지는 기분이 좋아 이놈아 큰놈을 너 애비에게 줘야지 할배에게 주냐?’라며 흡족해서 너털웃음을 웃었습니다. 손자는 말없이 아버지에게 땡감을 갖다 주고 아버지에게 귀 속말로 할배한테 준 건, 통시(화장실)옆에 떨어진 거야!’라고 말 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보다 아버지가 더 가깝다는 말입니다.

    

손자, 손녀를 돌봤던 많은 선배 할머니들이 이제 갓 아기를 돌봐주는 새내기 할머니들에게 손자, 손녀 키워줘 봐야 아무 소용없다. 저 놈들이 지 애비,애미만 챙기지 할아버지 할머니는 뒷전이다. 손자, 손녀 키워봐야 키운 공은 없고 골병만 든다.’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아예 키워주지 마라고 대놓고 훈수 까지 합니다.  

    

예전 대가족 제도 하에서는 부모대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많이 보살폈습니다. 부모가 때리려고 하면 할머니 품속으로 뛰어듭니다. 그 곳은 치외법권 지역으로 안전하고 따뜻했습니다. 아이들이 아무리 잘못해도 부모 앞에서 자기 자식을 때리지 못했습니다. 아이를 부모 앞에서 때리는 것은 부모를 때리는 거와 마찬가지라며 금기시 합니다. 손자, 손녀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으면서도 아이는 천륜에 의해 한발 더 가까운 부모에게 마음은 더 갑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손자 손녀의 보호울타리가 됩니다. 세상을 떠들 썩 하게한 평택의 원영군 사망사건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꿋꿋한 버팀목이 되었다면 아이는 죽음에까지 내 몰리지는 않았습니다. 유명한 사람들의 일대기를 읽어봐도 할머니, 할아버지의 영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윤동주 시인이 본인은 문과를 지망하고 아버지는 의대를 가라고 하며  부자간의 의견이 팽팽할때 할아버지의 결정으로 문과를 가게 됩니다. 

 

세상에 공없는 일은 없습니다. 손자,손녀가 잘 크게 뒤를 봐주는 것도 사람이 세상에 나와 해야 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 부모보다 아이들에게는 후순위로 밀려도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고 나 개인적으로는 아무런 유감  없습니다. 매와 독수리의 눈으로 손자, 손녀 커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해 합니다. 이것이 인생의 윤회입니다. 종족을 끊임없이 이어나가게 하는 것은 세상에 생명있는 것들의 첫번째 해야 할 과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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