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솔로몬의 지혜도 내 눈에는 지혜도 아니다

조왕래 2016. 3. 2. 13:56

    

 

나이든 사람이 돌아가시면 동네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처럼 지혜의 창고가 없어진다고 합니다. 나이 들어 치매가 걸리지 않는 한 지혜는 늘어난다고 봅니다. 젊은 날 무조건 믿었든  솔로몬의 지혜도 지금은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솔로몬의 지혜의 이야기는 아이를 낳은 두 창녀 중 한  창녀의 아이가 죽으면서 시작됩니다. 서로 산 아이가 내 자식이라고 때를 쓰면서 솔로몬 왕을 찾아와서 가려달라고 합니다.

    

너희가 살아있는 아이를 서로 자기 아들이라고 하고 죽은 아이는 남의 아이라고 주장하는 구나라고 하며 칼을 가져오게 한 다음 산 아이를 둘로 잘라서 한쪽씩 나누어 주어라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그 아이의 진짜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사랑으로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아서 왕에게인금님 그건 아닙니다. 제발 그 아이를 죽이지 마시고 저 여자에게 주십시오.’ 라고 애걸하였습니다.

    

이때 왕은 그 아이를 죽이지 말고 아이를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저 여자에게 주어라 그녀가 저 아이의 진짜 어머니다.’라고 판결합니다. 다시 읽어봐도 어미의 마음을 대변하는 이야기고 명 판결임에는 틀림없지만 실제 이런 판결을 했다면 참으로 위험한 판결입니다.

    

자기자식이 죽어 반미치광이가 되어있는 가짜 엄마는 살아있는 아이가 진짜 자기자식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또 아이를 자르면 죽는 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압니다. 가짜 어머니도 반쪽의 죽은 자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당연히 포기를 선택할 확률이 높습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두 마리 어미 말과 새끼 말이 있습니다. 새끼의 진짜 어미 말을 골라보라는 문제입니다. 정답은 먹이를 주어보면 새끼 말이 다 먹을 때 까지 기다리는 말이 진짜 어미 말이라고 합니다. 새끼를 배려하는 어미의 본능이 있으니 충분히 그럴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도 사실은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사람도 보모 자식 간에 밥을 같이 먹는데 식욕의 본능이 더 발달된 말이 새끼와 같이 먹지 않고 새끼가 다 먹은 뒤에 자기가 먹겠다고 물러서 있다는 것은 믿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다른 말이 옆에서 먹고 있는데 자기만 물러나 있는 다는 것은 현실성이 희박합니다.

    

지식은 아는 것이고 지혜는 아는 것을 잘 분별하여 슬기롭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인터넷에 재미있는 비교 글이 있습니다. 두 친구가 길을 걸을 때 호랑이를 만났습니다. 지혜가 있는 친구는 신발 끈을 힘껏 맵니다. 지식이 있는 친구는 아무리 빨리 뛰어도 100m 전에 잡혀먹는 다는 것을 알고 도망가기를 포기합니다. 그러나 지혜가 있는 친구는 옆 친구보다 한발만 먼저 달아나면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이것이 지혜와 지식의 차이입니다.  

    

나이든 사람은 지혜로워야 합니다. 지식만 갖고 원리원칙 적이고 기계적인 사고(思考)에만 매몰되면 주위에 사람은 다 떠나고 인생은 단조롭고 낭만이 없어집니다. 갈대처럼 바람에 흔들리지만 결코 부러지지 않는 유연성의 지혜가 나이든 사람의 덕목의 첫 번째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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