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들은 술 먹은 다음날 해장(解腸)으로 무엇을 잡숫고 계세요?”
직장인들에게 금요일 저녁은 최고의 날입니다. ‘불타는 금요일’이라는 뜻의 불금 행사가 질펀한 술자리로 여기저기서 일어납니다. 어제 불금행사를 진하게 한 동호회 후배가 토요일 아침에 몸 풀이 운동을 나와서 여러 회원들에게 물어봅니다.
전날 늦도록 술을 먹은 행색이 온 몸에 배어있습니다. 졸린 듯 게슴츠레 뜬 눈하고 푸석푸석한 얼굴이 어제 술자리가 어땠는지 안 봐도 비디오입니다. 숨을 쉬는 호흡 중간 중간에 역한 술 냄새가 풀풀 납니다. 어제 이렇게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먹고도 아침에 일어나 운동하러 나오는 것 보니 역시 젊음이 좋긴 좋습니다.
운동장 아침에 술꾼의 등장으로 각본 없는 가상의 해장국 선호도 퍼레이드가 시작되었습니다. 한참 설왕설래 하다가 결론적으로 북엇국, 콩나물국, 제첩국을 대표로 하고 다음으로 우거짓국, 선짓국 등이 뒤를 따릅니다. 사람마다 기호가 조금씩 다르지만 콩나물국은 누구나 선호합니다.
나 같은 경우 젊은 시절에는 술 먹은 다음날 아침에는 무조건 찬 음식을 먹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는 띵하고 속은 느글느글 합니다. 밥을 씹으면 모래알처럼 사각거립니다. 이때 찬 음식이 배에 들어가면 순간적으로 찬 음식이 점령군이 되어 불타는 속을 평정하는 기분입니다. 냉장고의 사이다나 냉수를 벌컥벌컥 마시고 냉면을 즐겨 먹었습니다.
그 뒤 찬 음식은 위에 좋지 않다고 해서 따뜻한 음식을 찾았는데 그것이 칼국수입니다. 그런데 아침해장으로 칼국수 집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비슷하고 간편한 대체품이 라면입니다. 아내에게 라면을 끓여 달라고 하면 파 송송 썰어 넣고 계란 탁! 풀어 맛을 최고로 내서 들고 옵니다. 꼬일 데로 꼬인 창자 속에 기름기나 단백질은 영 아닌지 내 속이 받아주지 않습니다.
해장라면으로는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고 원래의 라면스프만 넣은 담백한 라면 그대로가 뱃속에서는 거부감 없이 잘 받아줍니다. 라면은 생김새가 꼬여 있어서 그런지 꼬인 창자를 풀어주는 데는 라면이 내게는 제일 신통방통합니다.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에 ’연탄제를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 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는 시는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남을 위해 자기 몸을 태우는 연탄이야 말로 살신성인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자신은 꼬여진 라면이지만 자기 몸을 던져 술꾼들의 꼬인 속을 풀어주는 희생을 즐겁게 합니다.
영양은 다소 떨어지지만 가격대비 한 끼 식사로 라면 만 한 게 없습니다. 김치를 넣으면 김치라면이 되고 콩나물을 넣고 고추장 한 숟가락 풀면 얼큰한 콩나물 고추장 라면이 됩니다. 밀가루를 기름에 튀겨서 건강에 해롭다고 하지만 매 세끼마다 상복을 하는 것도 아니고 술 먹은 다음날 꼬인 속을 풀어주는 데는 나에게는 꼬인 라면이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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