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어느 송년 모임에서 상도 받고 기분 좋게 술도 몇 잔 했다. 흥겨워 콧노래도 흥얼거리며 집에 들어갔더니 아내가 정색을 하고 아들이 이직을 결심했다고 한다. 지금 다니는 회사가 급여는 많지 않았지만 안정적이어서 괜찮은 직장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직을 결심했는지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평소 아들의 차분한 성격으로 보아 욱하는 기분으로 처리한 것은 아닌 것 같고 더구나 처자식이 있는 몸인지라 많은 생각 끝에 내린 결정이겠지만, 그런 소식을 듣는 아비 마음으로는 가슴이 철렁하였다. 직장을 옮길 때는 옮길 직장을 미리 알아보고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야한다. 집을 사고 팔 때도 살집을 먼저 구하고 살던 집을 팔아야한다. 즉흥적으로 또는 욱하는 기분에 더구나 남의 말만 믿고 일단 사표 먼저 던진다거나 살집을 구하지 않고 먼저 팔아버리면 낭패당하기 십상이다.
다음날 아내가 며느리에게 전화를 해서 아버지가 걱정을 많이 한다는 말을 전하고 왜 옮기려 하는지를 물어봤다. 기존의 직장이 장기 근속체재로 고착화되어 승진이 어렵고 가고자 하는 회사가 신설회사여서 경력사원을 구하는데 급여 면이나 미래 전망이 밝아서 옮기려고 한다는 것이다. 직장 상사나 동료들도 모두 축하해주었다고 한다. 이런 말을 며느리로부터 들은 아내는 기쁜 마음에 걱정하고 있는 내게 전화로 알려왔다. 아들이 내게 상의 한번 없이 결정한 것이 괘씸했었는데 그런 마음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아들이 왜 미리 나와 상의를 하지 않았을까. 평소 내가 어려웠을까. 괜히 아버지에게 걱정만 끼친다고 나에 대한 배려였을까 등 여러 생각을 해보았다. 나도 직장을 들어가고 옮길 때 시골 부모님과 상의한 적이 없다. 부모님께 설명을 해도 잘 모를 거라는 생각이었다. 옮긴 후 말씀을 드리면 답은 한가지였다.
나라에서 하는 일이 가장 확실하니 그런 일을 하라는 것이다. 부모님 생각은 공무원, 법령에 의해 설립된 공기업, 법에 보호를 받는 기업 등을 염두에 둔 말씀이다. 보수보다 안정을 우선시한다. 세대가 바뀌어 내가 부모 되어도 자식들에게 똑같은 말을 한다. 그런 관점에서 아들이 학교 교사를 며느리로 데려올 때 기분 좋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존심이 있어서 자격시험이나 이직 등 대소사를 준비할 때 혹 안 되면 창피하기도 하니까 가족들 몰래 준비하여 결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날 때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수없이 그랬다. 아들도 그런 관점에서 내게도 먼저 말을 하지 못한 것으로 편하게 생각했다.
직장에서도 부하직원이 다른 직장으로 옮기려한다고 말을 할 때는 거의 성사가 된 것이다. 붙잡아서 마음을 돌리기는 너무 멀리 가버렸다. 아들이 옮기는 회사가 법령에 의해 설립된 걸음마 단계의 초기 회사니까 해야 할 일도 많을 것이다. 아무쪼록 역량을 잘 발휘하고 주위 동료들과 친하게 지내 새로운 직장 생활에 잘 적응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