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일주일에 하루라도 쉬고 싶어요.

조왕래 2013. 12. 30. 17:27

 

건설현장은 공기(工期)와의 싸움이다. 공기는 공사비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공기 내에 완공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공사 완공에 대한 전체 일정계획을 잡아놓고 부문별 세부계획을 세워 계속 휘몰아쳐 간다. 예상치 못한 돌발사태 (자재 수급차질, 안전사고발생)가 생기면 늦어진 공기를 야간작업해서라도 채워야 한다.

 

어느 한 공정이 늦어지면 관련된 다른 공정 일을 하지 못한다. 시계 톱니처럼 아귀가 맞아야 원활하게 현장은 움직인다. 무리하게 공기를 앞당기려다 각종사고도 발생하고 공사 품질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조심 안전사고는 배제하고 양질의 성과물을 탄생 시키기 위해 무진 애를 쓴다. 공사 책임자급은 언제나 좌불안석 노심초사한다. 

 

내가 일을 하는 건설현장은 아침 7시 20분이면 몸풀기 체조로부터 일과를 시작한다. 현장 책임자급은 6시 30분이면 출근해야 하고 현장원도 늦어도 7시까지는 나와야 한다. 역산을 해보면 집에서 나오는 시간은 대개가 6시전이어야 한다. 아침 체조 시간은 작업하기 좋게 몸을 푸는 시간이지만 다른 기능도 있다.

 

군대에서 점호를 통해 병사들의 건강상태와 사기를 짐작하듯 건설 현장에서도 아침 체조시간이 군대 점호시간이다. 몸이 불편한 사람과 작업 투입에 적절치 못한 사람을 가려내는 부수 효과가 있다. 당연히 모든 현장원은 필히 참석해야 한다. 

 

집에서 출근하는 사람은 새벽 첫 버스나 전철을 이용해도 늦기 때문에 개인 차량을 갖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무슨 자가용 출퇴근이냐고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곱지 않은 눈총을 주지만 어쩔 수 없다. 새벽 첫차를 타도 늦기 때문이다. 건설회사에서도 이런 사정들을 잘 알고 있어서 작업의 원활화와 직원들의 편의를 위해 현장 가까운데 월세방을 얻어주고 합숙을 시킨다. 하루 세끼 매식을 한다. 

 

보통 일요일은 현장이 쉬지만, 작업공정상 쉬지 못할 때도 잦다. 특히 작업반장 정도 되면 현장원이 출근할 일이 있는 한 현장에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일당을 받지 않고 월급을 받는 회사 소속의 실무 책임자급 이상은 휴일 근무해도 추가 수당이 없다. 회사가 수익을 많이 올리면 특별수당을 받거나 일이 없을 때도 기본급을 주니까 일당 인부와는 급여 계산 방법이 다르다.

 

어제 만난 작업반장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집에 가서 아이들 얼굴 보고 온다고 한다. 심한 경우 4~5개월 집에 못 간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쉬고 싶다고 한다. 전국의 건설현장을 직장 삼아 떠돌아다니는 산업역군들에게 위로의 박수를 보낸다. 

 

이런 현업원들의 땀 흘리고 고생한 보람이 있어 건물이 쑥쑥 올라간다. 우리나라 근대화의 첨병에 선 사람들이 무수히 많겠지만, 건설현장 노동자들도 그중 하나이다. 빨리빨리 공사기간 단축을 하여 비용절감에만 매몰 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충분한 공사시간이 주어졌으면 좋겠다.

 

경기도 광주의 천진암에 천주교 발상지 건물을 짓는데 공사 기간이 100년이다. 내가 작업관계자에게 물어봤다. '이 건물 완공을 못 봐서 섭섭하겠어요?' 했더니 '완공을 보는 사람은 기초 공사하는 것을 못 보잖아요. 피장파장이지요.' 빨리한 공사만 자랑스러울 것이 아니라 느리게 한 공사도 가치있고 보람있는 일이라는 사회 분위기도 필요하다. 느림의 미학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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