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은 장자 추수편(莊子 秋水篇)에 나오는 ‘정중지와(井中之蛙)’라는 사자성어로서 ‘견문이 좁아서 넓은 세상의 사정을 모르는 것을 빗대어 이르는 말’을 일컫는다. 또 다른 개구리 이야기로 영국의 '그레고리 베이트슨'이라는 생태학자는 끊는 물속에 개구리를 집어넣으면, 바로 뛰쳐나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미지근한 물에서 서서히 가열하면 대부분의 개구리가 죽을 때까지 뛰쳐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
충분히 스스로 벗어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개구리는 뛰쳐나오지 못하고 익어서 죽어간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직원들 교육에 자주 인용하는 사례로 개구리의 우둔함을 표현한다. 다른 관점에서 즉 역설적으로 이 말을 음미해보면 참 재미있다.
우선 우물 안 개구리는 안전하다. 개구리의 천적인 뱀도 없고 자동차에 치일 고민도 없다. 있는 먹이에 질리지만 않으면 천수를 누릴 수 있다. 먹이도 다른 것을 먹어보지 않았으니 질릴 일도 없다. 뭐 비교해 볼 대상을 알아야 비교해보고 비관도 할 텐데 도통 아는 게 없으니 불만도 없다. 우물 안 개구리는 아는 몇 개의 지식만으로도 행복하게 살아간다.
미지근한 물에서 서서히 뜨거워져서 죽는 개구리 삶이 사실 우리가 바라는 바람직한 죽음의 한 형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의 웰 다잉이란 결국 고통을 못 느끼고 웃으며 죽어가는 것을 말한다. 질병의 고통 속에 병상에서 100세 사는 것과 편안하게 90세에 생을 마치는 것 중 양자택일하라면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과거 인간 수명 30년 시대에는 30년 산 사람을 보고 천수를 누렸다고 했을 것이다.
지금의 인간이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어 수명은 늘어났어도 정신적 스트레스는 과거 사람보다 더 받고 있다. 아마존 강 유역의 미개인들이 문명에 눈을 뜨면서 사치, 마약, 비만에 시달리고 돈의 존재를 알면서 정신적으로 많은 고통을 받는 것을 방송을 통해 보고 있다. 멈추면 보이는 것처럼 인생사 모르는 게 약인 경우도 많다.
30년을 직장에서 한우물만 파던 사람이 퇴직 후 남의 말만 믿고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어 낭패를 보는 것을 자주 본다. 퇴직 후 은퇴설계 강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창업 컨설턴트도 난무한다. 30년 직장생활만 하던 사람이 강좌 몇 번 들었다고 새로운 창업 전선에 뛰어드는 것은 위험하다.
시니어가 되어 퇴직한 사람은 생뚱맞은 일을 하지 말고 하던 일의 범주 내에서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한다. 잘 모르는 곳에 덤벼들었다. 전 재산 다 날릴지도 모른다. 젊은이와 다르게 한번 실패하면 그것이 그대로 치명타가 되기 때문이다. 만회의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확률이 높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도 30년이나 한 직장에서 근무하고 정년퇴직했다. 건강하고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여 주위에 늘 사람들이 들끓었고 특유의 친화력이 있으니 장사를 해보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다. 이 사람이 호프집을 차렸다. 밑천도 많이 들지 않고 망할 걱정은 없고 큰돈은 못 벌지만, 인건비 정도는 건진다고 누가 꼬드겨 시작했다.
그는 6개월 못 버티고 손을 들었다. 취객들과 언쟁에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은 눈치다. 세상에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무수히 많다. 지금까지 살아오던 방식대로 살아가는 즉 우물 안 개구리로 사는 삶이 가장 안전하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