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보리수 따던 날의 풍경

조왕래 2013. 7. 5. 08:13

시골 밭 가장자리에 보리수나무가 딱 한그루 있다. 이맘때쯤이면 나무의 푸른 잎에 수줍은 듯 가려진 붉고 작은 보리수 열매로 가지가 축축 늘어진다. 바람이 일렁일 때마다 붉고 푸른 흐느적거림이 강렬한 태양 볕에 더더욱 싱그럽다. 농약을 하지 않고 자연 상태라 일부는 썩은 부분도 있고 너무 익은 것은 손만 닿으면 저절로 터져버린다.

 

맛은 단맛과 아주 약간의 신맛과 떫은맛이 있는데 익으면 익을수록 단맛은 깊어지고 신맛과 떫은맛은 줄어든다. 보리수 열매 따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우선 몇 개씩 손으로 움켜쥐고 슬며시 잡아당겨 딴다. 꼭지 부분이 덜 떨어지면 한 번 더 손질하여 휴대용 봉지나 그릇에 담으면 된다.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라고 우선은 따서 몇 알씩 입안에 털어 넣는다. 입속에서 톡 터지며 단맛이 확 퍼진다. 날쌘 동작으로 혀를 굴러 과육과 씨앗을 분리하고 씨앗은 뱉어낸다. 씨앗은 딱딱하기에 먹을 수 없다. 보리수 열매는 한방에서 약재로 사용하는데 혈액순환을 개선하고 타박상, 기관지 천식, 치질에 큰 효과가 있다고 한다.

 

요통이 있는 사람은 뿌리를 물에 넣고 달여서 복용하면 효과가 있고 오랜 시간 장복하면 천식을 이길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좋은 효능을 가지고 있는 보리수 열매이지만 단점은 장시간 보관이 안 된다는 점이다. 나무에 달려 있어도 잘 익은 열매는 비가 오면 곰팡이가 난다. 곧 장마가 시작된다니 지금이 수확의 적기다.

 

아내와 둘이서 부지런히 땄다. 오후에 초등학교 1학년인 처조카 아들이 온다니 따기 좋은 바닥 밑가지 하나는 체험 학습해보라고 남겨두었다. 알갱이가 작고 개수는 많다 보니 따는데 제법 시간이 걸린다. 손놀림 둔한 것도 하나의 이유이겠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따다가 싫증이 나면 오이밭에서 오이를 따서 바지에 쓱쓱 문질러 가시를 제거하고 우적우적 씹어먹는다. 물 마실 걸 대신할 정도로 물이 많다. 지금의 시골은 먹을 것이 많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드디어 4시간이나 작업시간을 공들여 끝이 났다.

 

수확의 총량은 6kg이나 된다. 나무 한 그루에서 이렇게 많이 나오다니 놀랍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알알이 모으니까 이렇게 많구나! 새삼 느낀다. 수확한 보리수 4kg은 설탕 4kg과 잘 혼합하여 효소로 만들어 차처럼 마실 것이고 나머지 2kg은 냉동실에 보관하여 매실차에 블루베리와 보리수 알갱이를 그대로 넣어 냉차로 마신다. 달고 시원하다. 아내랑 둘이서 마시는 기분은 제2의 신혼의 느낌이다.

 

석가모니가 보리수나무 아래서 득도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의 보리수는 나무 높이가 큰 다른 나무이고 우리가 먹고 있는 보리수나무는 키가 2~4m 정도로 밑에서 득도하기에는 너무 작다. 보리수나무의 원산지가 한국이라니 더욱 정이 간다. 우리나라 토종이니까 우리나라 환경에 잘 맞아서 그런지 밭둑 한구석에 지지리 못난 자리에 자리 잡았는데도 불평 없이 잘살고 해마다 듬뿍 열매를 선사하는 보리수나무가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