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곡 선사박물관 견학을 하고 조왕래
나는 역사에 관심이 많아 퇴직하면 문화재 해설사가 되고 싶었다. 운이 좋아 서울 암사동 유적 해설사 신규양성과정에 합격을 했다. 50시간의 주옥같은 교육의 기회가 주어졌고 오늘은 전곡 선사박물관과 선사 유적지를 견학 가는 날이다.
계획에 따르면 아침 8시 30분까지 주차장 집합이다. 매일하는 ‘런닝머신’ 위의 10km 속보보다는 아침안개가 몸을 휘감아 촉촉한 습기가 피부에 와 닿는 호사를 느껴보고 싶었다. 7시 반 집을 나섰다. 광진교하단을 돌아 한강둔치를 치고 올라갔다. 한강변의 테니스장, 족구장에서 아침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파이팅 소리에 덩달아 나도 힘이 난다. 선사마을을 휘감아 목적지에 도착했다. 8시 10분인데도 진행하는 허선생님과 우리를 싣고 갈 25인승 작은 버스는 이미 와 있다. 책임감이 강한 분들이다.
속속 도착하는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물과 보리강정 그리고 귤 두개씩을 간식으로 배급 받았다. 버스는 정시에 출발하고 나는 예습을 위해 강의 교재를 펴들었다. “유물과 유적으로 읽는 한국사”라는 주제에 ‘구석기란 무엇인가? ’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구석기라는 용어는 고고학자 존 러벅(John Lubbock)dl 1865년 그의 저서 ‘선사시대’에서 처음 사용했다. 이렇게 하나씩 알아 가는 것이 기쁘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 중 하나는 두발로 걸어서 손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직립으로 멀리 볼 수 있고 자유로워진 손으로 석기를 이용하여 짐승의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석기의 발견은 그시대 사람으로서는 놀라운 발견이다. 다양한 석기의 제작방법을 읽어가며 그 시대 사람으로 돌아갔다. 사나운 맹수에 도망 다니며 사냥도 해야 하는 데 절대적으로 연장이 필요했다. 머리를 써서 양면가공기술로 만들어 낸 아슐리안 주먹도끼는 커다란 매머드도 해체하는 훌륭한 도구였다. 불의 사용은 더욱 풍요로운 삶을 안겨주었다. 불이 있어 맹수에 맞서고 야간에도 활동이 가능했다.
전곡선사박물과 이한용관장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어 기분이 좋았다. 박물관은 22만평의 넓은 부지에 총사업비 482억을 들여 지하1층 지상 2층의 규모다. 우선 교육장으로 안내되었고 바로 관장의 강의는 시작되었다.
약7~6백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은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어 점차 세계 각 지역으로 옮겨가면서 진화되었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석기를 왜 만들었을까? 사람은 동물의 가죽을 벗길 강한 이빨과 손이 없기 때문에 이를 대신 할 도구가 필요했다. 더욱 날카롭고 양면을 다 사용하면 더 좋다. 단단한 돌을 찾아서 어떻게 가공할 것인가를 머릿속으로 설계를 하고 내려치거나 눌러서 적절한 석기를 만들었다.
유물을 보고 정확한 연대 추정은 어떻게 하느냐? 와 당시 사용했는지 여부는 어떻게 판정하느냐를 물어봤다. 과학적인 고증방법이 200여 종류가 넘지만 사실 어려운 작업이라고 한다. 발굴에도 삽이나 호미 , 붓 등 재래식 장비를 사용하는 수밖에 없는 점도 문화재 발굴의 어려움이라고 하는데 수긍이 간다.
오후 1시가 되어서야 강의는 끝이 났다. 점심시간이다. 걸어서 콩 요리집으로 갔다. 두부전골.비지찌게, 청국장, 순두부 등 각자 입맛에 맞게 주문한다. 갑자기 들이닥친 우리일행에 바빠 어쩔 줄 모르는 주인을 도와 험인 선생님과 사람 좋게 생긴 운전기사분도 서빙에 거들었다. 음식은 한마디로 맛이 있고 푸짐했다. 주인의 세심한 배려로 원두커피를 직접 내려주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강의를 들은 후라 전시관에 전시 물품이 새롭게 보인다. 우선 선사 시대의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모습을 20분간 방영한다. 추위와 배고픔은 당연하고 맹수의 습격과 열악한 환경 등 고단한 시대라고 자리매김 해야 할지 아니면 골치 아픈 일이 산적한 현재의 우리 보다 단순한 삶을 즐겼을 그들이 행복했을 지를 잠시 생각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전곡리 선사유적지로 갔다, 우리 선사 유적지보다 넓은 광경에 놀랐다. 형형색색의 국화를 터널로 전시하여 아름다웠다. 야외 전시품도 암사동 유적지보다 많았다. 여러 개의 연을 이어 날리는 장관에 우리 해설사 일행이 관심을 보이고 사진을 찍는다. 많은 연을 띄우는 방법은 가벼운 헬륨을 이용하고 굵은 연줄을 사용한다면 수백 개의 연도 날릴 수 있다. 과학과 돈이다. 이한용관장의 말이 생각났다. 생산 공장이 아닌 유적지는 예산이 절대적으로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선사시대 유적지는 더욱 고즈넉해서 선사시대 맛이 나야 하지 않나하는 의문을 품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목을 축이라고 마지막 남은 귤 하나씩을 더 배급해 준다. 운전 기사분이 언제 챙겨 오셨는지 콩비지를 비닐 팩에 담아왔다. 다만 수량이 한정되어있어 받지 못한 분도 있다. 출발장송인 우리의 선사유적지에 오니 시계는 오후 6시를 향해 줄달음 치고 있었다. 한발 한발 문화재 해설사의 길로 나아감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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