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아이와 약속을 지키는 부모가

조왕래 2018. 12. 27. 14:51

아이와 약속을 지키는 부모가

    

우린 어린아이와의 약속을 쉽게 잊어버리고 지키지 않아도 될 약속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퇴근길에 피자를 사줄게라던가 혼자 집 잘보고 있으면, 공부 열심히 해서 시험점수가 좋게 나오면 자전거나 휴대폰을 선물로 사 줄게같은 약속이다. 아이들과의 약속을 별 생각 없이 쉽게 하고 편리하게 잊어버리는 게 더 문제다.

    

공자의 제자인 증자의 이야기다. 증자의 아내가 시장에 가는데 아들이 따라오며 울었다. 아내가 아들에게 말했다. ‘집에 가 있어라 그러면 곧 돌아와 돼지를 잡아 줄게이렇게 달래어 아이를 떼어놓고 시장에 다녀왔다. 아내가 집에 와보니 증자가 돼지를 잡으려고 했다. 아내가 정색을 하며 말렸다. ‘아이를 달래려고 농담을 했을 뿐입니다.’ 증자가 대답하기를 어린아이와 농담이라니요. 아이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부모를 통해 배웁니다. 만약 자식을 속이면 이는 자식에게 속임을 가르치게 됩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속이면 자식이 어머니를 믿지 않게 되고 이는 옳은 가르침이 아닙니다.’

    

그리고 증자는 그대로 돼지를 잡아 삶았다고 한다. 지금도 집에서 키우던 돼지를 잡는 일은  큰일 때나 가능하다. 당시로도 재산목록 두세 번째인 돼지를 잡는 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자식의 옳은 교육을 위해 증자는 재산의 손실을 보면서도 단호하게 돼지를 잡았다

    

아이에게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두 가지 경험이 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오래전 일로 당시는 어리이집이별로 없을 때였다. 전봇대나 담벼락에 아이 봐줄 사람 구한다는 전단지가 붙었던 시절이다. 아래층에 50대의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같은 동네의 5살짜리 아이를 돈을 받고 돌봐주기로 했다. 아이엄마가 출근하면서 아이를 할머니 집에 맡겼다. 아이는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울었다. 아이엄마가 금방 올게’ ‘화장실 갔다 올게하고 거짓말을 하고 도망치듯 달아났다. 아래층에서 아침마다 아이의 울음소리로 마치 전쟁터 같았다. 아이는 엄마와 떨어지면 당연히 우는지 알았고 아이가 불쌍하고 애처로웠다. 그 아이가 다음해 유치원에 갔다. 아이 엄마가 수업참관을 하는 날이다. 다른 아이들은 엄마를 힐긋 쳐다보고 곧 엄마를 잊어버리고 아이들 틈에 뒤섞여 잘 논다. 그러나 이 아이만은 엄마가 그냥 가버리지 않을까 온 정신을 집중하여 해바라기가 되어 엄마만 쳐다본다. 아이엄마가 숨죽여 울고 있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우리 집 첫 손녀 이야기다. 직장에 다니는 며느리가 겨우 6~7개월 된 기어 다니는 손녀를 두고 직장에 복귀해야 했다. 며느리가 없는 낮 시간대는 할머니인 아내가 돌봐주기로 했다. 말을 못 알아듣는 손녀에게 며느리는 끊임없이 말을 했다. 직장에 나가야 하는 이유와 오후 몇 시경이면 돌아온다는 말을 한다. 아이는 말은 못하지만 알아듣는 것 같았다. 엄마가 나가도 칭얼대지도 않았고 할머니의 보살핌을 잘 받아들였다. 신기한 일은 택배라던가 관리사무소 직원 방문 등 손님들이 와서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든 아이가 며느리가 돌아올 시간 그때쯤에 며느리의 발소리가 나면 귀를 쫑긋 세우고 현관 쪽으로 기어갔다. 엄마의 발소리를 알아차리고 엄마의 귀가시간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어려서부터 매 맞는 아이는 나중에 자라서 폭력적인 어른이 된다. 폭력이 대물림된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거짓말을 들으며 자란 아이는 거짓말을 하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다. 사회가 점점 혼탁해 지는 이유 중에 하나가 부모에게 있다. 아이에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거나 약속을 하고도  쉽게 잊어버리는 신뢰 하지 못하는 부모의 태도로부터 대물림하듯 배운 것이다. 아이에게 미안해하지도 않고 임시방편으로 또 다른 거짓말로 둘러대는 등 신뢰받지 못하는 부모의 행동부터 고쳐야 한다. 아이는 모를 것 같아도 다 안다. 부모를 믿지 못하고 자란 아이가. 세상에 누굴 믿고 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