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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한잔 어때요?

조왕래 2017. 12. 7. 11:55

    

 

나보다 두 살이 적은 k는 도서관에서 가끔씩 만나는 사이다. 첫인상이 참 선하게 생긴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은 있었다. 오다가다 무슨 책을 보고 있나 곁눈질 해보니 부동산 관련 책이다부동산은 시니어라면 실제 사고파는 행동은 겁이 나서 못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시세는 어떻게 되며 향후 어떤 변화가 있을지에 대해 늘 작은 관심은 있다. 관심사가 같으면 대화가 싹튼다. 그리고 시간이 이 촉매제가 되어 k와는 몇 달 뒤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까지 발전 하였다. k는 나이가 많아 직장구하는 것을 포기하고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이 없다보니 시간은 부자인데 경제적으로는 빈곤하여 아내한테 용돈 달라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어느 날 k는 나에게 커피한잔 하실래요?’ 하면서 정답게 말을 건넨다. ‘! 커피요 좋지요하고 대답을 하자 잠깐만요하더니 가방을 챙겨서 나온다. 순간적으로 아마 오늘 도서관 공부는 그만하고 길 건너 커피숍을 가려나 보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에 내가 점심을 산 적이 있어서 거기에 대한 답례라고 생각했다. 아니다. 가방 속에서 믹스 커피 두 봉지와 종이컵 두 개를 꺼낸다. 익숙한 솜씨로 인스턴트 커피봉지를 쭉 찢어 컵에 털어 놓고는 뜨거운 물이 나오는 음료수대에 가서 물을 받아 믹스커피 봉지로 휘휘 저어서 내게 내민다.

    

순간 당황했다. 나도 믹스커피를 자주 마시지만 이렇게 접대까지는 할 생각을 못했다. 동전을 집어넣는 자판기 커피로는 남에게 대접해 봤지만 가방 속에 인스턴트커피와 종이컵을 준비하고 손님 면전에서 이런 커피 대접을 해본적도 없고 받아본 적도 하는 것을 본적도 없기 때문이다. 어리둥절해 하는 내 손을 k는 이끌고는  야외 벤치로 나간다. 벤치에 앉아서 뜨거운 커피를 후후 불어가며 마시니 그런대로 낭만이 있다

    

젖소와 암탉 그리고 돼지가 살았다. 되지가 말하길 나는 죽을 때 피한방울 까지 모두 주인에게 주고 가는데 살았을 때는 너희들만큼 주인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푸념을 했다. 젖소가 말하길 우리는 살았을 때도 적은 값어치지만 우유와 달걀을 주인에게 주지만 돼지야 너는 죽을 때 한번 모든 것을 주인에게 주기 때문이야.’라고 말했다. 인간관계에서도 큰 것 한방 주는 것도 좋지만 작은 것이라도 자주 나누어야 정이난다.   

    

남자들은 주머니에 돈이 없으면 주눅이 든다. 술이나 밥을 얻어먹어도 내 주머니에 돈이 있을 때 얻어먹는 것과 주머니에 돈이 없을 때 얻어먹는 것은 기분적으로 천지 차이다. 그러다보니 돈이 없는 퇴직한 남자는 집안에서만 뱅뱅 돈다. 밖에 나와도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꺼려하고 외톨이처럼 혼자 떠돌이 신세다. 누가 밥이라도 먹으러가자고 끌어도 금방 밥을 먹고나왔다고 거짓말을 한다.

    

돈이 없다고 주눅 들어 외톨이로 지내면 점점 더 외로움에 빠진다.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당당하게 적은 것이라도 나누면서 용기 있게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k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