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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표시

조왕래 2017. 12. 7. 11:47

 

웃어야할지 울어야 할지 아니면 믿어야할지 믿지 말아야 할지도 가늠이 서지 않는 황당한 이야기를 카톡을 통해 들었다. 내용을 간략히 줄이면 이렇다. 어느 시어머니가 명절에 다니러온 며느리에게 식구들 몰래 돈 3백 만 원을 음식과 함께 검은 봉지에 담아주었다. 며느리는 돈이 들어있는지는 까마득히 모르고 시어머니가 만든 시댁음식이라고 고속도로 휴게소 쓰레기통에 검은 봉지 통째로 던져버렸다. 집에 도착하자 시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검은 봉지 속에 날품 팔아 모은 돈 3백 만 원이 있으니 요긴하게 쓰라는 전화다. 깜짝 놀란 며느리가 차를 몰아 휴게소 쓰레기통을 뒤졌지만 이미 상황이 끝난 다음이었다. 며느리는 며칠을 식음을 전폐하고 생병이 났고 누구한테도 말 못하고 뭐 한 가지라도 사면 시어머니에게 그 돈으로 샀다고 둘러댔다. 며느리는 혼자만의 비밀로 평생을 가슴에 안고 살아야 할 처지가 되었다고 한다

    

남들 몰래 돈을 주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첫 번째가 청탁대가 등 뇌물이다. 남들이 몰라야 하기 때문에 하찮은 소박한 선물을 주는 척하면서 그 속에 금이나 보석 또는 돈을 숨겨서 전한다. 두 번째가 가족 간에 은밀히 돈을 주는 것인데 주머니 속에 몰래 찔러주기도 하고 겉으로는 남들과 똑 같은 봉투에 똑 같이 나누어주는 척하면서도 특별히 더 주는 가족이 있는데 대부분 형편이 어려운 가족인데 체면을 생각하여 비밀스럽게 한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부모님 품을 떠나 대도시에서 자취생활을 했다. 농촌인 집에서 직접 농사지은 쌀을 보내왔다. 지금처럼 앉아서 받을 수 있는 택배제도는 없었고 우체국을 이용하는 소포나 기차를 이용하는 수하물이 있었다. 우체국 소포는 크기도 한정이 있고 비용도 비쌌지만 철도 이용은 쌀도 가마니로 보낼 수 있고 비용도 저렴했기 때문에 주로 철도수하물을 이용했다. 단점은 기차역까지 가서 부치고 찾아와야하고 시일도 오래 걸렸다.  

    

집에 전화가 없던 시절이니 물건을 보냈다는 것도 편지로 하고 받았다는 것도 편지로 답장을 해야 했다. 편지는 주로 아버지가 써서 보내왔는데 한번은 어머니가 직접 편지를 보내왔다. 읽어보니 보내는 쌀가마니 속에 아버지 몰래 돈을 이 만 원 넣었으니 받으면 아버지에게 쌀을 받았다는 답장을 할 때 편지 말미에‘0’을 표시해 달라는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옛날 은행거래를 잘 하지 않던 시절에는 돈은 우체국에 가서 소액환으로 바꾸어서 등기 편지 속에 넣어야 했다. 이렇게 현찰을 짐 속에 넣은 것은 불법이고 혹 분실되면 증거가 없으니 찾을 수도 없다. 하지만 우체국에 가는 일도 번거롭고 수수료도 들어서 위험을 감수하고 짐 속에 돈을 감추어 보내기도 했다.

 

당시  어머니의 사랑도 느꼈고 이런 생각을 한 어머니가 우스워서 편지를 읽으며 한바탕 웃은 적이 있다. 어머니는 객지에서 혼자 자취하는 아들이 불쌍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여 가끔씩 다른 형제들 몰래 돈을 얼마간 주머니에 쑤셔 넣어줬다. 이번에는 쌀가마니 속에 돈을 숨겨서 보내왔을 뿐이다. 돈은 비닐봉지 속에 꽁꽁 숨겨져 쌀가마니 중간쯤에 있었다. 요즘도 담벼락에'0'표시를 보면 두사람만의 무슨 은밀한 약속의 표시가 아닐까 하는 의심도 해본다.

    

사람 마음이 참 묘해서 나만 특별한 대우를 받는 다고 생각할 때 기분이 좋아진다. 똑같이 나누어 받으면 별로 고마운 마음이 없지만 나만 살짝 불러서 너한테만 주는 것이라고 귓속말로하고 몰래주면 대단한 대우를 받는 것처럼 기분이 으쓱해진다. 이런 기분을 아는 나는 자식들에게 용돈을 줄때도 따로 불러 살짝 줬다. 그렇게 키워서 그런지 지금은 자식들로부터 용돈을 받고 있는데 저희들끼리 아버지에게 얼마의 용돈을 드렸는지를 서로 비밀로 하는 것 같다. 사람사이에는 들켜도 그만인  아주 작은 비밀은 있어야 스릴이 있는 삶의 행복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