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들의 산소분쟁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집안 묘소를 위해 산을 사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묘를 이장했습니다. 지금은 아버지 어머니도 그 산에 잠들어 계십니다. 몇 년 전에 부모님 산소에 갔더니 누군가 새로운 묘를 만들었습니다. 비석도 없고 도대체 누구 묘인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해마다 벌초도 하고 관리도 하는 것으로 보아 후손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던 중 올해 부모님 산소에 갔다가 60대 중반의 부부가 새로 만든 묘에 간단한 재물을 올리고 절을 하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내가 ‘이산은 우리 산인데 돌아가신 분과 어떤 관계이며 어떻게 여기에 산소를 썼느냐고 물어봤습니다. 여자 분의 친정아버지가 묻혀계시며 원래 이 산은 자기들 산이었는데 이 산을 팔면서 거래를 할 때 구두로 여기 산소자리 하나를 부탁하여 새로운 산주인 아버지로부터 승낙을 받았다고 합니다. 나는 아버지 생전에 그런 말씀을 들은 적은 없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아버지께서 빠른 매매성사를 위해 그 정도 청은 들어주실 분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산을 팔고 살 때 훗날의 분쟁을 예방하기 위하여 산소 부분만 똑 떼어 토지 등기를 별도로 한다고 하지만 예전에는 구두 언약이나 개인 간 사문서로 만들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매장이 보편화되어 있던 조선시대에 산소를 쓸 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명당자리를 찾는 풍수지리 사상이 널리 퍼지면서 남의 산에 묘를 쓰는 투장이 공공연하게 행해졌다고 각종기록이 전합니다. 산이 넓어도 산소를 쓸 만한 명당자리가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내 산에 남이 산소를 못 쓰게 하는 산주인 금장(禁葬)세력과 남의 산에 산소를 쓰려고 하는 투장(偸葬)세력간의 크고 작은 소송이 끝이 없었습니다. 어떤 기록들이 있는지 도서관에서 각종자료를 찾아보고 간추려 정리합니다. 조상들의 생활상을 찾아보는 것도 우리 시니어의 할 일입니다.
1.투장의 형태
늑장(勒葬)은 힘으로 남의 산에 묘를 쓰는 행위입니다. 지방의 토호세력이 강력한 무력으로 산주를 제압하기 때문에 사회적 경제적 세력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대낮의 횡포입니다. 다음으로 암장(暗葬)이라 하여 산주 몰래 묘를 만듭니다. 남의 이목을 피해 야간에 행하기도 하고 산소라는 것을 모르도록 봉분을 만들지 않는 평장(平葬)도 했습니다. 암장은 몰래 한다는 특성상 주로 평민층 이하 하층민들이 많이 했습니다.
2.투장자와 금장자의 대결
이미 산소를 만들어버리면 유교사회에서는 분묘는 살아있는 사람 취급을 받아 훼손하면 살인죄로 처벌을 받기 때문에 분묘주인이 아니면 누구도 묘에 손을 댈 수 없습니다. 소송을 통해서 분묘주인이 스스로 이장하게 해야 합니다. 소송은 아주 간단합니다. 산주가 기득권이 있습니다. 소유주가 문중이거나 마을인 경우 누가 먼저 묘를 만들었느냐와 정1품 벼슬인 경우 사면 90보 이내의 제한 거리에 저촉되느냐를 따지고 풍수지리에 방해되는 가를 살피면 됩니다. 하지만 진짜 싸움은 소송이후에 묘를 이장하지 않기 때문에 끝없는 싸움이 계속됩니다. 그래서 산소를 쓰기 전에 막아야 합니다. 서로 무력을 동원하여 투장자와 금장자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3,투장자는 이유를 들어 이장을 연기 한다.
이미 산소를 만들어버리면 투장자는 함부로 산소를 파 해칠 수 없다는 약점을 이용하여 여러 이유를 들어 이장을 하지 않습니다. 우선 동절기는 땅이 얼어있다고 연기합니다. 다음으로 ‘3,9부동총’이라 하여 풍수지리에 3월과 9월에는 이장을 하지 않는다는 근거를 내세웁니다. 다음으로 농번기를 내세워 농사에 바쁘다는 이유를 들어 이장을 연기합니다. 이런 모든 이유는 관에서도 인정했기 때문에 실제 이장을 할 수 있는 기간은 2월10월 11월의 3~4개월에 불과합니다. 또 투장자가 위세를 앞세워 소송을 하지 못하도록 금장자의 집에 노비를 데리고 가서 엄포를 놓고 가재도구를 부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요즘 같으면 깡패를 동원하는 일입니다.
4,산주인 금장자는 어떻게 해결하나
소송에 이겨도 이장을 하지 않으면 어쩌지 못하는 폐단을 없애기 위해 숙종 31년에 판결 후에도 이장을 하지 않으면 처벌하는 규정을 만들어 관에서 곤장을 때리고 투장자를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래도 이장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옥에 가둔다 해도 명절이나 집안 큰일이 있으면 임시로 석방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막무가내로 버티면 어쩌지 못했습니다. 이는 풍수지리의 명당을 수호해서 후손이 잘되길 바라는 심정과 가난한 집은 달리 옮길 곳도 없기 때문입니다.
5, 금장자의 극단처방인 관굴과 사굴
관에 소송을 통해 관에서 묘를 파 해치게 하는 것을 관굴이라 하는데 금장자 입장에서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하지만 관에서는 투장자를 잡아오라고만 하지 능동적으로 관여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몰래 남의 산에 산소를 쓰고 숨어버리면 찾을 길이 막막합니다. 이럴 때는 불법이지만 위굴이라 하여 산소 옆을 파서 훼손하면 묘가 훼손 될까봐 투장자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위굴을 하고 관에 자수를 하여 스스로 귀양길을 택합니다. 심지어 기록에 의하면 누나의 묘를 조상의 묘와 가까운 곳에 썼다고 위굴을 하고 ‘누이와 생질의 죄인이 될지언정 조상과 문중의 죄인은 될 수 없다.’ 라고 외칩니다. 문중 중심의 종법사상이 투절한 시대가 조선 후기입니다.
6,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역장
조상의 묘 머리위에 산소를 쓰는 것을 역장(逆葬) 이라합니다. 후손이라 하더라도 조상의 묘소위에 산소를 쓰면 문중에서 가만히 놔두지 않습니다. 하물며 남이 이런 행위를 하면 도저히 묵과할 수 없습니다. 목숨을 걸고 싸움을 시작합니다. 지금도 이 사상은 남아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 묘소 위에 산소를 만들지 않습니다.
좁은 국토의 주인이 산자가 아니고 죽은 자의 무덤이 차지한다면 안 될 일입니다. 이제 화장 문화가 자리를 잡고 수목장과 잔디장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조상들의 풍수지리에 근거한 산소를 지키려는 노력이 대단위 아파트단지나 공단조성으로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다 부질없었다고 느낍니다. 국토의 효율적 이용과 조상 섬김의 양자가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장례문화의 정착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