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않는 식물의 용기
9월 초순이라 하지만 한낮의 기온은 30도에 육박할 만큼 아직은 뜨겁다. 계절의 변화에 맞춰 모내기를 한 논에는 한여름 햇살을 받은 벼 이삭이 제법 통통하게 살이 쪄가고 있다. 벼라고 하여 똑 같은 벼가 아니다. 들판 군데군데는 이미 벼를 벤 논이 있다. 벼를 벤 논의 벼는 사람이 종자를 개량하여 빨리 수확할 수 있는 올벼품종의 벼들이다. 올벼는 올해도 추석에 햅쌀의 이름으로 비싼 가격이 팔려서 조상님의 차례 상에 떡하니 올라갈 것이다.
날카로운 칼날을 장착한 벼 베는 농기계인 콤바인의 회전칼날에 올벼는 싹둑 잘려 버렸다. 자세히 살펴보니 잘린 상처사이로 생명의 꿈틀거림이 있다. 지금까지 벼이삭의 양분통로인 줄기에서 아니 싹둑 잘린 그 상처 사이로 또다시 푸른 벼 순을 슬그머니 그리고 매일 아주 조금씩 밀어 올린다. 마치 까까중머리에 머리털 돋아나듯 봄의 새싹처럼 파릇파릇 돋아났다.
베트남 같은 동남아시아 더운 지방에서는 벼도 이모작이 가능하여 새순이 다시 돋아 또 다시 열매를 맺지만 가을과 겨울이 있는 우리나라는 열매 맺기에는 가망이 없다. 이렇게 푸르름만 더 하다가 어차피 벼이삭은 못 맺고 된서리에 주저앉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생각이다. 벼는 계속 도전한다.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면 열매를 맺으려고 애쓰다가 성과 없이 시들어버리는 농작물이 많다. 태풍이 지나간 배 밭의 찢어진 가지에 뒤 늦게 하얀 배꽃을 피운다. 참외나 수박을 씨를 땅바닥에 뱉어버리면 알맞게 흙에 묻힌 씨앗은 땅 사이를 헤집고 파란 새싹이 돋아 나온다. 그러나 너무 늦어버려 열매를 맺지 못하고 찬 서리에 대부분 스러져 버린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열매를 맺고 작지만 성공하기도 한다.
젊은 시절에는 철지나 고군분투하는 농작물을 봐도 안쓰러움이 없었다. 되지도 않을 일에 무모하게 도전한다고 비웃기까지 했다. 세상을 살아보니 그게 아니다. 안 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력해보는 그 가상스러움에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어쩌면 우리는 미리 포기하고 주저앉아 버린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지도 못한다. 성공 문턱에서 여기가 문턱인지도 모르는 것이 사람이다.
뽑고 뽑아도 밟고 밟아도 끈질기게 솟아나는 잡초의 삶을 요즘 배운다. 새로운 일에 도전해서 두 달이 지났다. 집에서 멀어 출퇴근 시간도 많이 걸린다. 일을 하다 보니 처음 하는 일이여서 모르는 것이 많다. 무엇보다 불쑥 불쑥 이 일을 제대로 배워서 또 써먹을 곳이 있을까 대충하면 되지 하는 간사한 마음이 든다. 사람은 도둑질 말고 다 해보라고 했다. 이왕 한다면 잘해야 한다. 건성 대충해서는 안 된다. 오늘 못하는 데 내일 잘 할 수가 없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빠른 때다.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했다.
몇 번 시험에 실패하면 ‘아~ 나에게는 무리야 내가 될 턱이 없지’ 하고 포기한 적도 있다. 9부 능선을 넘어 곧 성공인데 문턱에서 9부 능선임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때 이른 포기를 했을지도 모른다.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했다. 실패를 미리 염두에 두면 아무 일도 못한다. 철지난 농작물의 끝임 없는 도전정신을 보면서 용기를 다잡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