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강아지풀
늘 자주 보던 풀인데 오늘 새삼스럽게 반가운 풀이 ‘강아지풀’이다. “강아지풀”이란 이름은 이삭(꽃)의 모양이 강아지의 꼬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1년생으로 종자로 번식하고 곡식인 서숙(조)과 비슷하지만 서숙보다 훨씬 작다. 밭에 서숙과 강아지풀이 같이 돋으면 쉽게 구별을 못해 어린 나는 당황하기도 하고 가끔은 서숙을 강아지풀인 양 뽑아버리기도 했다.
강아지풀의 작은 씨앗은 새들의 먹이로 이용되고 사람들도 흉년이 들었을 때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먹기도 했던 구황식물(救荒植物)로 알려져 있다. 식량이 떨어지고 먹을 것이 없으면 강아지풀 씨를 받아 죽을 끓여서 먹기도 했다고 하는데 보릿고개를 직접 겪은 내 기억에 먹어보거나 들어본 적도 없어 아주 심각한 흉년에나 먹었던 모양이다.
강아지풀은 참 순한 풀이다. 아무리 잡초지만 제 살길을 찾는다고 비장의 무기 하나씩은 갖고 있다. 억세 풀은 칼과 같은 날카로움을 갖고 있어 잘 못 만지면 손을 벤다. 독을 품고 있는 풀도 있고 잎이나 줄기에 가시를 갖고 있거나 진액이 나오는 풀도 있다. 대부분 풀에서 나오는 색소로 인해 손이 푸르딩딩해진다. 강아지풀만은 아무렇게나 다루어도 손에 상처를 주거나 역겨운 냄새나 독소를 내 뿜지 않는다. 낫으로 쓱쓱 베어 꼴짐 속에 넣어와 소 먹이로도 주는 유익한 풀이다. 물론 곡식과 같이 있으면 잡초로 취급되어 뽑히는 버림을 당한다.
장난감이라고 전무하던 옛날 시골에서 강아지풀은 좋은 장난감이다. 강아지풀 머리 부분을 손으로 잡고 쑥 뽑으면 강아지 꼬리 같은 머리 부분만 쏙 빠진다. 손바닥위에 올려놓고 손바닥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 이삭의 긴 수염의 활동으로 벌레가 기어가듯 앞으로 기어간다. 마치 살아있는 것 같다. 동생들 앞에서 마술을 부린다하고 손바닥에서 꿈틀거리며 앞으로 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함께 웃었다.
강아지풀을 코 밑에 양쪽으로 붙이면 수염 같다. ‘에헴 내가 할아버지다’ 하고 아이들 앞에서 마치 할아버지가 된 양 뻐긴다. 말을 하거나 팔을 등짐지고 팔자걸음을 걸으면서도 강아지풀이 코 밑에서 떨어지지 않아야 성공이다. 윗입술에 잔뜩 힘을 주고 코 사이로 밀어 올려야 떨어지지 않는다.
장난질도 한다. 여학생들 뒤로 살금살금 다다가 목덜미에 강아지풀로 살살 간질이면 마치 벌레가 목덜미에 기어가는 기분을 느껴 화들짝 놀란다. 더 심한 장난은 목덜미 속으로 강아지풀을 쏙 집어넣으면 나무 위 송충이가 떨어져서 몸으로 들어간 줄 알고 펄쩍펄쩍 뛰고 옷을 벗고 한동안 난리를 친다.
자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나 콧구멍 속으로 살살 문지르면 간지러움에 파리가 얼굴에 앉았는지 알고 자기 손바닥으로 자기 빰을 때린다. 웃음을 참지 못해 웃다가 들키고 맞을까봐 도망가기도 했다.
한방에서는 구미초(狗尾草) 또는 낭미초(狼尾草) 라고도 부르며, 열독을 풀어주는 작용이 있어 충혈된 눈을 치료하는데 사용하고 민간에서는 9월에 뿌리를 캐어 말려서 촌충을 없애는 약재로 쓰기도 한다고 하니 이제 잡초의 이름을 벗고 약용식물로 등극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