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당당해야 어른이다

조왕래 2016. 9. 2. 09:17

            

    

 

세상을 살다보면 실세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잘 보여야 당장 편하고 훗날 덕도 볼 수 있습니다. 실세는 어려서는 부모님일 수도 있고 선생님일 수도 있고 커서는 직장 상사일수도 있고 거래처 담당일수도 있습니다. 또래 중 덩치가 크고 힘이 있는 친구도 아이들 때는 분명 실세입니다. 실세에 고개 숙이며 알랑방귀 뀌는 것도 살기 위함이라고 다 이해를 합니다.

    

반면 사람에게는 인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나보다 약자인 걸인에게 적선을 하고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워주고 내가 먹을 것을 뚝 떼어 주기도 합니다. 후일 보답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배운 인간의 배려심입니다.

    

세상을 많이 살았을수록 훈련되고 단련되어 나도 점점 실세가 됩니다. 은퇴를 할 정도의 나이가 되면 크게 머리 숙일 곳도 없습니다. 점점 당당해지면서 정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순리입니다. 하지만 어른답지 않게 아주 작은 실세에 굴종하고 인정에 외면하는 시니어들이 많음에 놀랍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은퇴를 한 시니어들에게도 세상사는 이야기를 기고하는 인터넷 신문사가 있습니다. 기자들이 기고한 글을 심사해서 채택 여부를 결정하는 편집위원이 있고 시니어 기자들과 편집위원을 카톡으로 함께 묶어 두었습니다. 카톡으로 정보교환도 하고 이런저런 질문도 하면서 친목을 도모하라는 의미입니다.

    

기자 한사람이 몇 번 재수 끝에 정규직이 아니라 단기 취업이 되어서 내일부터 일터로 나간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본인으로서는 기쁨을 함께 나눌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축하한다는 응답은 딱 한 사람 뿐 입니다. 반면 편집위원의 생일인 날에는 대부분의 시니어기자가 생일 축하한다고 카톡에 멋진 케익 사진이나 감동적인 글을 올렸습니다. 둘 중 어느 것이 진정 축하를 받아야 할 일인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정답은 다들 느끼실 것입니다.

    

세상 산 연륜도 있고 더 이상 고개 숙이지도 않아도 될 은퇴한 사람들이 조그만 실세에는 초라해 보일만큼 아부를 하면서 정을 베풀어 축하의 덕담을 나누어 줘야할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인색한가하는 서글픔을 느꼈습니다. 약자에 군림하지 않고 강자에 비굴하지 않는 당당한 시니어가 어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