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루 쌈 먹을 땐 엄마 생각이
나의 고향은 경상북도 북부지방인데 어른들은 상추를 ‘부루’라고 불렀다. 나도 이 나이 먹도록 여러 지방을 다녀봤지만, 상추를 부루 라고 하는 소릴 듣지 못했다. 물론 그 지방의 방언을 다 들어보지 못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문득 이 단어가 생각나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부루는 상추의 방언으로 충청도와 제주도지방에서 통용된다고 기재되어있다. 아~ 이 말이 방언으로 상추를 뜻한다 하니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는 안도감도 들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우리 집의 역사로는 충청도와 제주도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또 한 번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어릴 적 기억으로는 상추는 햇볕이 강한 한낮에 뜯으면 쓴맛이 강했다. 그래서 그날 먹을 상추는 아침에 준비하거나 전날 해 그름에 준비해 둔다. 또 뜯으면 하얀 진액이 나오는데 한낮에는 이 양이 많다. 쓴맛의 근원은 이 흰 진액이다. 그런데 요즘 상추는 품종 개량되어 그런지 잘 모르겠는데 한낮에 뜯어도 쓰지 않다.
온상 상추는 흰 진액도 없다. 쌈 채소를 작고 단단하고 윤기가 흘러 먹음직스럽게 키우기 위해 골프장에서 사용하는 잔디 성장 억제제를 사용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 뒤로는 자연산처럼 보이는 작고 단단한 쌈 채소류에 의심을 하고 있다. 물론 성장 억제제가 인체에 해로운지는 잘 모르고 있는데 막연히 나쁠 거라고만 생각한다.
겨울이나 한여름 말고는 우리 집엔 늘 상추가 있었다. 고추, 상추, 된장, 밥만 있으면 끼니가 되었다. 준비하기도 쉬워서 텃밭에 5분 정도면 한 소쿠리 상추를 딸 수 있었다. 고추나 파가 추가되기도 한다. 상추는 포기채 먹는 포기상추가 있고 잎을 계속 따 먹는 잎 상추가 있다. 예전엔 전부 포기상추였다. 맛도 포기상추가 낫다. 요즘은 포기상추를 시장에서 보기 어렵다.
시골집 찬장을 열면 소쿠리 속에 늘 상추가 있었다. 농사가 지금처럼 기계화도 아니고 잡초를 근원적으로 봉쇄하는 검은 비닐도 없던 시절이니 씨 뿌리고 잡초 뽑고 새벽부터 해가 질 때까지 늘 종종걸음 치면서 일을 해도 날마다 농사일의 연속이었다. 힘들고 일도 많았지만, 가난은 늘 함께 했다.
시골 아낙은 밥하고 빨래는 기본으로 하면서도 농사일은 농사일대로 해야 한다. 남정네들의 일도 많다. 농사일은 기본으로 하고 산에 가서 나무해오고 새벽 쇠죽도 쑤고 쟁기질 등 힘든 일은 남정네들의 몫이었다. 농사철 바쁠 때 농촌 아낙의 일손을 덜어주는 것이 상추였다.
여름철 식사 때는 지금은 사라진 펌프로 지하 속 찬물을 한 주전자 길어 올리는 작업이 추가되었지만, 그 시원함은 지금의 냉장고 속 물맛을 능가했다. 물 주전자 속 찬물의 영향으로 주전자 밖에는 물방울이 맺히는 결로 현상으로 더 시원함을 느꼈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상추를 보면 엄마 손에 자주 들려있던 상추 소쿠리가 떠오른다. 밥 먹으라고 부르던 엄마 목소리도 들린다. 자랄 때 많이 먹어 이젠 질릴 만도 한데 나는 상추를 지금도 좋아하며 잘 먹는다. 쌈 쌀 때는 한 잎이 아니라 2~3개의 잎을 겹쳐서 큼지막하니 싸서 우적우적 씹어 먹는다.
부루 라는 단어도 이제는 쓰지 않다 보니 기억 속에만 있다. 내 고향의 방언 중 잠자리를 '촐베이'라고 하고 물건이 떨어졌다를 물건이 '띠깼다'고 했다. 엄마도 '어매'라고 불렀다. 다른 데서는 들어보지 못한 말이다. 사투리는 정감이 있다. '부루 쌈 싸먹자!'하든 어매의 말을 다시 한번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