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영원한 직장은 없지만 직업은 있다.

조왕래 2016. 7. 17. 17:15

    

나는 전기공학을 대학에서 전공하고 오랜 기간 전기 안전 분야에서 일을 했습니다. 젊어서는 기술자로 현장을 누비고 다녔지만 승진을 하고 또 하면서 실무에서는 물러서고 물러서며 부하직원들을 지도, 감독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기술자격인 기술사 시험에도 합격하고 대학강단에도 섰습니다.  점점 현장기술에는 멀어지고 관리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 공을 인정받아 국민봉사상도 받았습니다. 겉으로는 화려한 기술자의 길을 걸은 것으로 이력에 나와 있지만 속으로는 절반은 기술자요 나머지 절반은 행정을 다루는 관리자였습니다. 안타깝게도 나의 기술력은 과거에 멈춰 주춤거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가상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돈 많은 어느 부자가 병에 걸렸습니다. 현대의 의술로 고치질 못해 냉동인간이 된 후 100년 뒤 의술이 발전되자 신체를 해동시켜 병을 고쳐서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 부자는 애석하게도 1세기 후의 사람들과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손자의 손자뻘들입니다. 이제 모든 것이 자기가 살던 때와는 달라져있습니다. 결국 시대를 따라가지 못해 병은 고쳤지만 행복한 삶은 살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성웅 이순신 장군이 지금 짠하고 환생되어 해군 참모총장직을 맡는다면 변화된 시대에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할 것입니다. 변화하는 세월의 열차에 승차해서 같이 움직여야 삶이 가능합니다.  

    

퇴직 후 새롭게 취업한 곳에서 하는 일이 현장 기술지도입니다. 나의 이력을 보고 이런 일을 맡깁니다. 오랜만에 현장에 부딪혀보니 젊은 시절 내가 직접 다루던 장비도 많이 발전해있고 용어도 일본어에서 영어로 바뀌어 있습니다. 기계식 장비가 거의 전자식 장비로 변해있습니다. 기계식 장비는 동작되는 모양을 눈으로 볼 수 있지만 전자식 장비는 무접점이어서 움직이는 모양을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결과는 나타납니다. 기계 장치는 오래 쓰면 닳지만 전자식 장비는 구동 부분이 없기 때문에 닳지 않습니다. 다만 시간이 오래가면서 전자부품의 특성이 변하여 오동작이 일어납니다. 자동차가 기계장치에서 점차 전자장치로 변하고 있는 것과 같이 내가 현장을 떠나있는 동안에도 기술은 나날이 발전해 왔습니다

    

수명 100세 시대에서 직장은 달라도 직업은 영원하려면 의과대학 교수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을 요즘 절실히 느낍니다. 의과대 교수는 학생도 가르치지만 본인 스스로 수술복을 입고 집도를 하는 의사입니다. 한때 산업역군으로서 활약하던 사람이 거기에 멈춰있으면 자동화설비 시대에서는 더 이상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일선에서 이선으로 물러나야 합니다. 한때 최고의 기술자로 공장장까지 오른 사람이 어느 날 보니 이제 쓸모없는 기술자가 되어 자기 발로 공장을 걸어 나왔다는 슬픈 이야기도 듣습니다. 중간에 멈춰버린 나의 기술 능력을 최신무기로 재무장하고 현재를 따라잡기 위해 고생 좀 하고 있습니다. 전문서적도 찾아서 읽고 염치불구하고 후배들에게 한수 지도를 요청합니다.

    

다양한 음식재료와 요리방법이 발전해도 결국 음식의 맛을 평가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입맛이 변하지 않으면 전문 요리사는 금방 요리법을 이해하고 따라합니다. 배움의 속도가 일반인과는 현저히 빠릅니다. 현장의 기술도 마찬가지입니다. 바탕에 기본 원리를 알고 있고 현장에서 아주 멀리 떠나있었던 것은 아니어서 따라잡는데 어려움있지만 못할 것은 없습니다. 혼자 알기위해 끙끙대는 것보다 물어보는 것이 편하고 쉬울 때가 많습니다

    

몰라서 후배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쑥스럽고 창피했습니다. 하지만 늦었다고 할 때가 제일 빠른 때라는 말과 같이 지금 물어보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물어서 알려고만 하면 그 사람의 능력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대형 서점에서 신기술 서적을 찾아봅니다. 인터넷으로 신지식을 검색하고 비판해 봅니다. 초심을 잃지 말라는 말이 참으로 가슴에 와 닿는 요즘입니다. 영원한 직장은 없지만 영원한 직업은 있습니다. 초심으로 배우고 익히는데 게으르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해봅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