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하는 날의 풍경
김장문화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배추를 100여포기가 넘게 겨울 김장을 했습니다. 김장은 겨울의 반 식량이라고 불릴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겨울에 푸성귀가 없으니 김치의 권위는 확고합니다. 이렇게 많은 양을 하다 보니 각자 자기 집의 김치는 자기가 담아야 했습니다.
나도 결혼하고 신혼 때인데 김장을 담그겠다고 아내와 같이 김장배추 사러 시장에 갔습니다. 배추를 5포기 사겠다고 하니 상인이 웃으면서 ‘에게! 김장이 아니고 김치 담그시는군요.’ 해서 마주 보고 웃었습니다. 어쨌든 자기 집 김장은 자기가 했습니다.
최근에는 식생활의 서구화로 아이들이 김치를 싫어합니다. 농업기술의 발달로 겨울에도 싱싱한 채소가 넘쳐나고 유통구조개선으로 산지에서 직송되는 무 배추가 마트에만 가도 그득합니다. 돈만 있으면 배추김치는 물론이고 돌산 갓 김치, 총각김치, 등 다양한 김치종류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김장을 해도 가족이 대부분 핵가족화 되어 김장하는 양이 절대적으로 줄었습니다.
현대판 김장은 시대상을 반영하여 집단가족 김장이 유행합니다. 오늘이 농사짓는 처갓집에서 김장을 하는 날입니다. 직접 농사를 지은 무 배추와 마늘, 파, 고추도 있으니 젓갈과 생강정도만 시장에서 사면됩니다. 집집마다 자가용 자동차가 있으니 흩어져 있는 가족들이 김장 하는 날은 축제장처럼 모여듭니다. 처갓집에도 김장하는 전 날 부터 이집의 아들, 딸들이 사위와 며느리와 함께 옵니다.
사위들도 계급이 있어 윗대의 사위가 있고 아래대의 사위가 있습니다. 나의 윗대인 처고모 내외분들은 모두 돌아가셨으니 내가 이집의 사위중 제일 어른사위 입니다. 내 말 한마디에 처조카 사위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입니다. 김장하는 전날부터 남자들은 술자리를 마련합니다. 맥주, 소주, 양주 닥치는 대로 먹어 치웁니다. 술이 얼근해지면 내가 군기를 잡습니다. 처갓집에 잘하고 아내들한테 잘하라고 엄포를 놓습니다. 장모님도 박수를 치고 처남들도 옳소! 소리를 연발합니다. 막상 자기 사위한테 직접 못 할 말을 내가 속 시원히 해주니 기분이 최고조에 달합니다.
제삿날은 다 모이지 않아도 김장하는 날은 다 모입니다. 자기들이 갖고 온 김치 통에 필요한 만큼 담아갑니다. 넉넉하게 있으니 더 가져가려고 싸울 일도 없습니다. 오전 중에 대략의 분배가 끝나서 각자의 자동차에 실으면 김장 작업은 끝입니다.
점심 먹으로 대가족이 이동합니다. 초등학생 아이들이 많다보니 손 짜장 집이 선택 1순위입니다. 중화요리 집은 메뉴가 다양합니다. 비용은 주로 내가 계산을 했는데 오늘은 처갓집 장손이 자기가 하겠다고 손을 번쩍 듭니다. 호기롭게 한번 쏘게 만드는 것도 분위기상 필요합니다.
가까운 곳에 사는 가족이 친가든 처가든 모여서 공동으로 김장을 담는 새로운 김장문화가 그나마 해체되어가는 가족이라는 끈을 질끈 동여매게 합니다. 가족이 모두 모여 정을 나누는 크고 작은 생산적 행사가 많았으면 합니다. 간장이나 된장 담그는 날도 모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