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나무와 어머니
맞다! 과일나무가 과일을 키우기 위해 가쁜 숨 내쉬며 폭삭 늙어가듯 어머니도 우리 자식들 키우느라 마음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어릴 적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싸움을 하면 어머니는 내 새끼들 뱃속에 다시 주어 담아 놓으라고 아버지에게 대들었습니다. 자식의 씨앗은 온전히 어머니 몫으로 생각한 듯합니다. 어머니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자식은 엄마의 배추 속고갱이 같은 것인데 이렇게 여럿을 뽐아 내니 나는 껍데기만 남은 쭉정이에 불과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자의 몸 깊은 곳의 엑기스가 모여서 아기가 된다는 생각입니다. 당연히 아이를 낳은 여자가 아이를 낳지 않은 여자들보다 몸속의 정기(精氣)를 더 빼앗겨 더 빨리 늙고 건강에도 좋지 않다고 어머니는 생각한 모양입니다.
현대의학은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속고갱이가 빠져나가 산모에게 해롭다고 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가임기 여자들이 달마다 하나씩의 난자 배란을 거치는데 그 난자가 정자와 수정되어 아기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데 수정이 되지 않았다하여 이미 생성된 난자가 다시 몸속 영양분으로 환원 되지 않고 아이가 뱃속에서 엄마로 부터 영양분을 받아먹지만 이는 2차적으로 엄마가 영양분을 더 섭취하면 되기 때문에 임산부가 꼭 건강이 나빠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아기에게 모유를 수유한 엄마는 유방암에도 덜 걸리고 아이를 낳은 산모는 자궁암도 덜 걸린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이어져 온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진실입니다. 수 백 만년을 이어 내려온 출산의 유전자가 있는 한 여자가 아기를 낳았다고 병에 더 잘 걸리거나 수명이 단축되는 일도 없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여자의 평균 수명이 남자보다 길다는 것이 주된 근거 입니다.
과일나무는 좀 다릅니다. 보통의 나무들은 성장 조건에만 맞으면 쭉쭉 빵빵 잘 자랍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왕성한 푸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과일 나무는 사람이 정성을 들여 보살핍니다. 인위적으로 나무에 거름을 주고 병충해가 없도록 농약도 치고 과일나무 사이의 간격도 유지하고 잡초도 제거해줍니다. 하지만 과일나무를 위한다기보다 과일의 수확에만 모든 포커스를 맞춰놓은 작업입니다. 굵고 맛있는 과일을 만들기 위해 과일나무는 가지치기라는 이름으로 자기 몸이 싹둑싹둑 잘려나가야 합니다. 자식 같은 여러 개의 열매 중에 하나만 남기고 솎음을 당해야 합니다. 두 눈을 뻔히 뜨고 자식이 죽어나가는 참척의 고통을 안으로 삭혀야 합니다.
과일나무의 수명이나 맵시는 과수원 주인입장에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양계장의 알 낳는 닭들이 알만 낳다가 늙어서 알 낳는 목표량을 채우지 못하면 가차 없이 목숨을 내어 놓는 것과 같습니다. 과일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키우는데 모든 정기(精氣)를 쏟아서인지 동년배 다른 일반 나무들 보다 나뭇가지는 비틀어지고 나무의 피부는 덕지덕지 검버섯을 피우고 있습니다. 같은 나무 나이에 비해 빨리 노쇠 하는 나무가 과일나무입니다. 과일추수가 끝난 과일 나무를 보면 마라톤을 완주한 주자가 가쁜 숨을 내쉬는 형상으로 나뭇잎은 생기가 없고 후줄근합니다.
내가 나이 들어보니 의학적으로 뭐라 해도 자식 키우는 어머니의 정성은 스스로 과일나무가 된 형상임을 늦게야 깨닫게 됩니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달토록 고생 하시네’ 하는 어머니의 마음 이라는 동요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자식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자기 몸이 가지치기 당하여 싹둑 잘려나가는 아픔도 감내하는 분이 어머니입니다. 하지만 자식들은 자기 힘으로 자란 줄 알아도 그 섭섭함을 내색하지 않으십니다. 모든 나무가 푸름을 자랑하는 7월에도 과일을 크고 맛있게 하기위해 최선을 다하느라 그 자신은 시들시들 힘겨워하는 과일나무를 바라보면서 어머니를 떠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