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야기

아버지 당신을 사랑합니다.

조왕래 2015. 8. 19. 00:10

 

잔치 날이나 생일날 자식들이 아버지에게 술잔을 올리는 모습은 흔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이 술집에서 단 둘이 술 먹는 모습은 보기 어려운 장면입니다. 첫 번째 걸림돌이 나이차이가 30은 넘었다는 점과 부자간 술집 출입이 아직은 우리사회에서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나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딱 한번 술집에 같이 갔습니다. 정육점과 함께하는 일반 식당 같은 곳인데 아버지에게 고기를 사 드리고 싶어서 그런 집으로 모시고 갔습니다. 지금도 눈에 선 합니다. 나와 아버지는 40세의 나이 차이가 있어선지 아버지의 어색해 하던 모습입니다.

    

아들이 집에 왔습니다. 저녁을 먹었지만 밤 10시가 되니 속이 출출하여 밖에 나가 술 한 잔 하자고 내가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내는 집에 안주도 있고 술도 있는데 왜 늦은 밤에 밖에 나가냐고 말을 합니다. 그래도 술은 술집에서 먹어야 제격이라고 아들을 앞세워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들의 나이도 30대 중반이고 가정을 갖고있는 가장입니다.

    

10시면 술꾼들이 활개를 치는 시간입니다. 술집골목이 대낮같이 훤 합니다. 손님들이 북적거리는 횟집에 단 들이 앉았습니다. 아들은 어떡하든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려고 술집선택에서부터 안주 선택, 술의 선택까지 내 의견을 묻습니다.

    

정면으로 아들을 보면서 소주잔을 주고받습니다. 아들이 긴장을 합니다. 서먹한 분위기를 녹이는 데는 술이 최고입니다. 술잔을 부딪치며 두 세잔의 소주가 목구멍을 넘어갑니다. 술의 힘으로 분위기가 점점 풀립니다. 아들의 직장 분위기를 물어봤습니다. 술이 아니면 괜찮아요,’, ‘좋아요.’ 하는 단답형으로 끝날 대답이 술의 마력으로 길게 이어집니다. 지금 하는 일이 재미있고 상사로부터 귀여움을 받는다는 말에 나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둘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제법 취했습니다. 내가 술값을 계산 하려고 하니 아들이 계산을 합니다. 내가 사 주려고 했는데 오히려 얻어먹은 꼴이 됐지만 아들의 얼굴에 서는 만족의 미소를 읽습니다. 집으로 오는 골목길에서 아들이 내개 말합니다. ‘ 아버지 난 아버지가 좋아요. 무엇보다 손녀 손자가 할아버지를 좋아해요.’ 술의 힘이 아니면 감히 하지 못할 말입니다. 아들이 와락 나를 껴안습니다. 내 어깨를 막 주물러 줍니다. 연신 입으로는 아버지가 좋다는 말을 합니다. ‘그래 나도 내 아들이 좋다.’는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손자가 할아버지인 나를 좋아한다는 말 보다 아들인 네가 나를 좋아한다는 말이 내게는 더 좋다. 라는 말을 하려다 꿀꺽 삼켰습니다.  

    

같은 양의 술을 먹었는데 아들이 더 취한 모습입니다. 아들 몸이 허약해진 게 아닌가 걱정도 됩니다. 아들도 박봉에 자기 새끼 키우고 직장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칠 것입니다. 착하고 예쁜 며느리가 맞벌이로 가정살림에 보탬을 주지만 부모의 눈에는 늘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빚 없이 저축하며 산다고 하니 대견하기도 합니다.

    

부드럽고 자상한 아버지가 자녀를 위대한 인물로 만든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근엄하고 엄격한 아버지가 아닌 자신의 고민을 터놓고 말할 수 있고 자잘한 수다를 함께 떨 수 있는 아버지를 원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배우지를 못했습니다. 근엄하고 엄격한 아버지상만 보고 자랐습니다. 근엄한 내 아버지의 내면의 외로움을 그때 알았어야 했었는데 너무 늦게 깨닫고 있습니다.

    

나는 누구의 아버지이자 또 누구의 아들입니다. 이런 연결고리는 끝없이 이어 질것입니다. 아버지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한 번도 입 밖에 내어보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들아 고맙다. 너로부터 사랑하다는 말을 들어서 나는 지금 행복하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