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궐에 아름다운 바닷새가 날아 들어왔다. 임금은 아주 기뻐하며 바닷새에게 산해진미의 음식을 대접하고 궁중 무희들로 하여금 춤과 노래를 밤낮으로 부르게 했다. 바닷새는 기뻐할 줄 알았는데 식음을 전폐하더니 임금의 정성도 몰라주고 일주일 만에 죽어버렸다. 왜 죽었을까. 내가 그렇게 지극 정성으로 대접했는데. 임금은 낙담하였다. 새를 새로 대해야지 사람으로 대했기 때문에 죽은 것이다.


이황(퇴계) 선생의 올린 여러 편의 상소문 중 왜구가 서신을 조정에 보내왔는데 예의범절에 어긋난다고 서신을 받지 않은 사실에 대한 상소문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이황 선생은 “그들은 그들대로의 법도가 있는데 우리의 법도에 맞지 않는다고 돌려보냄은 짐승에게 사람의 법도를 따르라고 강요한 것과 같습니다. 그들의 법도를 그대로 수용하면 될 것입니다. 그들이 나중 이를 낙담하여 앙심을 품으면 장차 조정의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다.”

신혼부부가 감자를 쪄서 남편은 설탕에 아내는 소금에 찍어 먹었다. 서로 내 방식으로 먹어야 맛이 있다고 우기다. 결국 제3자에게 어느 방식이 좋은가 묻기로 했다. 끝까지 들은 제3자는 “글쎄요 난 고추장에 찍어 먹습니다.” 여기에 무슨 정답이 있겠는가. 각자 기호대로 편하게 하면 된다. 

앞의 바닷새 이야기나 이황 선생의 상소문이나 감자 이야기를 보더라도 우린 너무 내 방식을 고집한다. 나이 들면 몸의 민첩성은 떨어져도 마음은 유(柔)해지고 미소는 늘어나야 한다. 얼굴에 온화한 웃음 가득 담고서 바라봐 주는 것으로 나이 든 사람은 대화의 반은 한 것이다. 한 발 더 나가 긍정적인 추임새만 넣어주면 대접을 받는다.


앞의 바닷새 이야기나 이황 선생의 상소문이나 감자 이야기를 보더라도 우린 너무 내 방식을 고집한다. 나이 들면 몸의 민첩성은 떨어져도 마음은 유(柔)해지고 미소는 늘어나야 한다. 얼굴에 온화한 웃음 가득 담고서 바라봐 주는 것으로 나이 든 사람은 대화의 반은 한 것이다. 한 발 더 나가 긍정적인 추임새만 넣어주면 대접을 받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