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자물쇠 나무

조왕래 2013. 12. 24.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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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친구 아들이 서울 남산 밑의 멋진 야외 웨딩홀에서 11시 이른 결혼식을 했다. 피로연 음식까지 챙겨 먹었지만 시계를 보니 오후 1시다. 일행들이 해가 중천에 떠서 그냥 헤어지기도 뭣하고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이왕 남산 부근까지 왔으니 남산 드라이브도 하고 전망대에도 올라가 보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서울 살면서 남산에 안 가본 사람은 드물겠지만 와 본지 20여 년이 훌쩍 넘었다는 사람부터 설치된 케이블카를 처음 본다는 둥 변화된 남산 모습에 모두 신기해 하고 즐거워 한다. 나도 5년 전에 남산 벚꽃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것이 가장 최근이니 5년 만에 가 본다.

 

남산은 높이는 낮지만 서울 한복판에 있어 시민의 접근성이 좋고 봄에는 벚꽃, 가을에는 단풍길 등 계절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아름다운 산이다. 접근 도로도 잘 정비되어있고 케이블카도 운행되어 남녀노소 어떠한 복장으로도 오를 수 있는 뒷동산같이 친근하고 아름다운 산이다. 서울 시민의 허파 구실을 하는 고마운 산이기 하지만 애국가에 등장하는 우리민족의 영혼의 산이다.

 

남산 꼭대기에 외국에서나 볼법한 엄청난 자물쇠 집단을 보았다. 저마다 간절한 소망을 글로 적은 후 희망을 도둑맞지 말고 초지일관 마음도 변치 말라고 자물쇠로 꽉 잠금 해서 인공으로 만든 자물쇠 걸이용 로프에도 있고 인공나무에도 수북이 매달려있다.

 

실제 살아있는 나무였다면 그 무게에 살아남지 못할 엄청난 양이다. 언뜻 보면 무슨 자물쇠 무덤 같다. 밑에 있는 자물쇠는 지나온 연륜으로 글씨도 퇴색되고 녹슬어 이제는 무슨 기원을 품어 안고 있는지 자물쇠는 알겠지만 바라보는 관객은 통 모를 정도로 희미하다.

 

사랑의 증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 갖고 싶어한다. 옛날 이야기에는 파경(破鏡)이라 하여 거울을 반으로 나누어 각자 한쪽씩 갖고 있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지만 우리 때는 연인 사이에 사랑하는 마음을 변치 말자고 손가락 걸고 맹세를 했다. 

 

또 사진을 함께 찍어 밑에 흰색으로 “변치 말자”라는 글자를 사진관에서 넣어준 사진 한두 장씩은 빛바랜 앨범에 다들 있을 것이다. 진심 어린 사랑 편지를 믿기도 하고 자필 각서를 요구해서 받은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사랑은 영원하다. 그러나 그 상대는 바뀔 수 있다.” 는 말처럼 미래를 못 미더워 아니 변할 것 같은 두려움에 부적처럼 이러한 행위를 하고 안위를 느끼는 것이 나약한 사람 심리인 모양이다.

 

같이 간 일행에게 이걸 보고 어떤 느낌이 드느냐고 물어봤다. 다양한 답이 돌아왔다. 이런 걸 착안하여 자물쇠를 파는 상술에 놀랐다는 사람이 있고 글씨를 예쁘게 쓰고 그림도 넣었으면 좋겠다는 사람, 이렇게 약속했는데 지금은 몇 %가 이 약속을 지킬까? 궁금하다는 의견도 있고 자원낭비이니 공원 관리소에서 못하게 말려야 한다는 소수 의견도 있었다. 

 

관광지에 가보면 돌이나 나무에 자기 이름이나 사연을 적어둔 것을 보고 자연 경관을 헤쳤다고 눈살을 찌푸렸는데 공개된 장소에 아름답게 맹서의 자물쇠 나무를 만들어 둔 것이 참 재미있고 발상이 깜찍하다.

 

남들의 소망을 읽어 보는 것도 남의 비밀 노트를 훔쳐보는 것처럼 짜릿하다. 외국인에게도 이런 내용을 홍보하면 관광자원으로도 한몫을 할 것 같다. 결혼에 골인하거나 소망했던 것을 이룬 후 다시 찾아와서 들여다보면 훈훈한 마음도 들 것이다.

 

소망의 자물쇠 공원이나 종이쪽지에 소망을 담아 통속에 넣어두면 1년에 한번씩  땅에 묻어주는 등 다양한 소망의 이벤트가  전국 곳곳에 더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