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례 선생님
겨울이 내일 모래인데도 음력으로 올해 안에 결혼식을 올려야 좋다고 사람들로 예식장이 붐빈다. 결혼식에는 주례선생님이 중심적이고 큰 역할을 한다. 그런데 요즘 결혼식의 운영은 젊은 사회자가 주례선생님을 제치고 더 튀는 경우도 많이 보고 아예 주례 없이 하는 결혼식도 봤다.
내가 결혼 할 때인 30여 년 전에는 주례선생님의 조건으로 아들딸이 있고 이혼의 과거가 없고 남들에게 칭송을 받으며 지금 부부금슬이 좋은 사람 이여야 했다. 이런 분 중 신랑신부나 신랑신부의 부모들이 잘 알고 있는 사람 가운데서 약력 소개 시 자랑스럽고 사진발이 잘 받는 사람을 골랐다.
주례를 부탁하여 응낙을 받으면 신랑신부의 소개 프로필을 전해드리고 주례가 원하는 질문에 답을 한다. 결혼식이 끝나면 혼주 측에서 같이 밥을 먹고 돌아가는 길에 배웅도 했다. 결혼 당사자도 신혼여행을 갔다 오면 약주에 과일꾸러미를 들고 인사드리러갔다. 주로 학교 은사나 직장의 장 또는 고위직 퇴직자나 국회의원 이런 분들이 많이 했다.
지금은 정치인은 원천적으로 주례를 못서게 되어 있다. 주례 서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지 않아 기피하는 사람도 많다. 주례를 형식적으로 생각하여 예식장 소속 직업 주례선생님에게 맡기는 경우도 흔하다. 이런 전문주례 선생님을 볼 때 이건 아닌데 싶어 안타까움을 많이 느낀다.
주례사를 마치고 신랑신부와 사진을 찍으면 예식장 종업원이 건네는 흰 봉투를 받는 것으로 계약이 종료되는 사무적인 행태가 영 맘에 안 든다. 혼자 슬그머니 나와 하객들 틈에 식권 들고 가서 밥을 먹거나 선물용 케이크로 바꾸어 총총히 살아지는 모습을 보면 몰락한 영웅을 보는것 같아 참 안타깝다. 외톨이 주례선생님 낌새가 있으면 하객인 내가 다가가서 오늘주례사 중 어떤 부분이 참 좋았다고 말을 건네면 머쓱해 하면서도 함박웃음을 짓는다.
내 결혼식에는 나의 상사를 모셨다. 그 당시만 해도 직장 장의 권위는 대단했으므로 휘하 동료직원들이 여왕벌 모시듯 옹립하여 움직였다. 부하직원 결혼주례서는 날은 상사로서 대접받는 기분 좋은 날 이였다. 내 아들 결혼식에는 내 친구를 주례로 세우고 나는 사진 촬영 등 스케줄이 빡빡해서 주례를 대접할 수 없으니 내 친구들에게 대신 잘 모셔달라고 했다. 친구가 친구를 모신 다는 것이 말이 안 되지만 오늘은 친구가 아니고 주례선생님이니 친구로 대접하면 남들 보기에도 안 좋다는 말로 신신당부했다.
결혼식의 주례는 결혼식을 주제하는 신성한 사람이다. 예식장에서 소개받은 분이라도 혼주 측에서 정중히 모셔야 옳다. 돈 몇 푼으로 사용하는 용역인부 부리듯 해서는 큰일 날 일이다. 우리 사회가 효율, 능률, 신속, 실속 같은 말이 지배하면서 전통, 예절, 권위, 배려 이런 것들이 무너져 내린다. 대단한 가문의 선남선녀의 맺음의 중앙에 서서 첫발을 내 딛는 성스러운 자리의 증인이자 주제자인 주례선생님이 떳떳하게 대접받아야 당당한 결혼식이라 생각한다. 5분 주례사를 위해 5시간 노력한다는 주례선생님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