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감이 무너져
기대감이 무너져
“아니 김 선생 여기 어쩐 일이요?”
글쓰기 모임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동년배의 김 선생을 우리 집 앞 골목길에서 만나고 깜작 놀라 내가 물어 본 말이다.
김 선생도 나를 보고 화들짝 놀라며
“아니 조 선생이 어찌 여기를…”하며 놀란 토끼 눈을 한다.
알고 보니 김 선생이 우리 동네로 지난달에 이사를 왔단다. 먼저 살던 곳에서 이사를 해야 하는데 전셋집을 알아보던 중 우리 동네가 직장이 가깝고 전세금도 저렴하여 이리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알고 있는 김 선생은 대기업에 임원으로 근무하다 퇴직을 한 분인데 경제상식에 해박하고 건강상식도 풍부하여 좋은 사람으로 기억한다. 게다가 목소리가 감미로워 여성들에도 인기가 많았다. 이제 이웃사촌이 되었으니 동네친구로서 김 선생을 커피숍에서 자주 만났다. 대화주제가 정치, 경제 등 세상물정이 모두 우리 입에 오르내렸다. 동년배로 생각이 같으니 한마다로 죽이 잘 맞았다. 참 서로 좋은 친구를 얻었다고 속으로 기뻐했다.
어느 날 아내끼리도 서로 알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김 선생이 한 모양이다. 이렇게 말했다. “우리끼리 이렇게 친하게 지내니 아내들도 서로 친해지면 좋겠다. 그러니 언제쯤 아내를 동석해서 밥 한 끼 같이 먹으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해왔다. 덧 붙여서 우리 동네로 이사를 왔으니 터줏대감에게 신고식으로 김 선생이 먼저 밥을 사고 싶다고 했다. 만날 시간과 장소는 나보고 정하라고 한다.
아내에게 동의를 구하니 그렇게 하자고 승낙을 했다. 그래서 모월 모일 맛 집이라고 소문은 났지만 만 원대로 가격은 착한 식당에서 저녁을 6시에 하기로 했다. 비싸고 좋은 음식점은 퇴직자인 우리들에게 부담이 가고 또 너무 싸구려 음식은 예의가 아니 것 같아 나도 고민 끝에 정한 음식점이다.
처음 만남인데 아내는 옷차림이나 시간약소 등 신경을 쓰는 눈치다. 6시에 만나기로 했으니 10분전쯤 도착하여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서빙하는 직원이 음식을 주문하라는 독촉에 함께 식사할 손님이 있으니 좀 기다려 달라고 양해를 구했지만 눈치가 보인다. 눈은 출입구 쪽으로 향해 있었다. 그런데 6시 10분이 지나도 오지를 않았다. 슬슬 종업원과 들어오는 다른 손님들의 시선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창가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음식을 시키지 않는 진상손님이라고 궁시렁거리는 것 같았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총이 눈총이란다. 몸이 아픈게 아니라 마음이 아프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의 눈총도 느껴지기 시작했다. 6시 20분이 다 되어서야 김 선생 내외가 들어왔다. “좀 늦었습니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사과를 한다. 분위기상 어색함을 피하려 내가 얼른 대화를 바꾸었다.
문제는 늦어서 미안해하는 표정이 있거나 뭐 좀 늦을 수도 있지 하는 제스처라도 쓰면 화라도 낼 텐데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과 행동에 있었다.
사람이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엉뚱한 대답을 하면 화가 난다고 한다. 달을 손가락으로 가르치고 달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생뚱맞게도 손가락이 아름답다는 등 기대하지 않은 말을 듣는 것과 같다. 일순간 기대감이 확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