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에만 너무 의존하다가는 모처럼 만든 좋은 제도가 빛바랠 수도
양심에만 너무 의존하다가는 모처럼 만든 좋은 제도가 빛바랠 수도
지하철에는 임산부를 위한 별도의 자리가 있다. 경로석보다 더 특별한 붉은색의 자리다. 만약 임산부가 없다면 그 자리는 빈 체로 운행되어야하는 고귀한 자리다. 하지만 임산부가 아닌 사람이 앉아서 가는 모습을 자주 본다. 좋게 생각하면 임산부가 아닌 사람이 앉는 경우가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첫째는 주위에 임산부가 없어서 이왕 비어있는 자리에 앉아 있다가 임산부가 타면 그때 가서 자리를 양보하면 되지 뭐 하는 편의주의 발상이다. 두 번째는 임산부도 힘이 들고 피곤하겠지만 나도 임산부만큼 힘든 노약자거나 아픈 환자라는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주장이다. 두 가지 이유 모두가 생각하기 나름으로는 이해가 간다.
우리말에 ‘척보면 안다.’는 말이 있다. 임산부석에 앉아있는 사람이 노약자로 보이지 않고 철면피로 보이는 사람이 많다. 얼굴에 철판 깔고 누가 속으로 욕을 하든 말든 나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철면피다. 출산율이 떨어지는 요즘에는 임산부에 대한 배려가 절실하고 여왕처럼 받들어 모셔야 할 처지다. 철면피들이 그 자리에 도저히 앉아서 가지 못하도록 한방에 해결하는 확실한 방법은 없을까? 잠시 생각해본다.
예전에 문화영화를 공짜로 보여주던 시절이 있었다. 도로를 가로막아 가설무대를 만들고 관람객은 의자도 없이 땅바닥에 앉아서 봤다. 바닥이 마른 땅인 경우는 그냥 땅 바닥에 퍽 눌러 앉아 보고는 일어나서 엉덩이 흙먼지를 털어 내던 위생관념이 약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비가 온 후여서 땅바닥이 젖어 있을 때는 땅바닥에 앉을 수가 없다. 헌책이나 신문지나 하다못해 돌이라도 갖다놓고 깔고 앉아야 했다. 문제는 영화가 끝나면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어지럽힌 그대로 두고 가버린다. 이런 관객을 몰상식하다고 주최측에서 욕을 해댄다. 이런 사태가 난 것은 의자를 준비하지 않은 주최측의 잘못이지 그 흙 묻고 젖은 종이를 주머니에 넣을 수도 없는 관람객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은 성인 다 되어서 알게 되었다. 주최측은 다양한 변수에 대해 대처를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임산부석에 임산부외에는 앉을 수 없도록 조치가 필요하다. 의도가 좋으니 글자 몇 자의 안내로 제대로 지켜질 것이라고 믿었다면 너무 착한 생각이다. 유어스테이지의 리포터인 손웅익님이 대전 전철의 임산부 좌석을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린 것을 보고 바로 이 방법이구나 하고 쾌재를 불렀다. 서울전철의 임산부자리 표시보다 더 크고 화려하다. 앉는 자리에 임산부배려석이라는 표식을 들고 있는 곰 인형을 놓아 아무리 배포가 크고 얼굴에 철판을 깐 철면피라도 자신이 임산부가 아니라면 앉지 못할 것 같다.
몇 자의 안내 글이나 경고 그림만으로도 잘 지켜지면 참으로 좋은 일이다, 하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 더 강한 묘책을 강구해야 옳다. 지켜지기를 양심에만 너무 의존하는 것은 자칫 제도를 유명무실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 좋은 의도에서 만든 제도라면 제대로 지켜지는지도 확인해 보고 지켜지도록 좋은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