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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아들네 집, 딸네 집

조왕래 2019. 1. 3. 16:51

우리 집, 아들네 집, 딸네 집    

 

 

 

 

요즘은 시대가 많이 변해 자식이 부모와 함께 사는 기간은 자식들의 결혼 전이다. 딸과 아들은 시집이나 장가가면 집을 얻어 내 보내는 것이 불문율처럼 지켜진다. 한마디로 서로 따로 산다. 나는 아들과 딸 11여를 두고 있는데 홀가분하게 제 짝을 찾아 둘 다 결혼을 시켰다아내와 함께 사는 내 집인 우리 부부의 집이 있고 아들네 집 딸네 집이 따로 있다.

    

식구(食口))란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이다. 손자손녀들이 식구의 범주에 같이 사는 강아지는 넣어도 할아버지 할머니는 넣지 않는다는 섭섭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요즘은 그렇겠구나 하고 이해를 한다. 효도니 부양이니 이런 말은 이제 사전에서나 찾아보는 말이라고 치부하고 무덤덤하게 지낸지가 제법 된다.   

    

딸네 집은 수원이다. 딸이 임신으로 입덧을 해서 아내와 함께 한번 가 보기로 했다. 딸네 집에 가려면 수원 역에 내려서 버스나 택시를 타야 한다. 자주가지 않으니 버스는 노선도 잘 모른다. 그래서 주로 택시를 탄다. 운전기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딸네 집에 가는 중이라는 말을 하게 됐다. 택시기사가 딸네 집에 간다는 내 말을 듣고는 얼굴에 화색이 돌고 웃으며 하는 말이

    

딸네 집에 가면 아무런 걱정이 없겠네요. 며칠 푹 쉬시다 가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대답할 말을 잊을 정도로 한방 맞은 기분이 들었다. 나보다 불과 10여세 아래인 기사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같은 성을 나누어 갖고 있는 손자손녀가 있는 아들네 집보다. 다른 성씨가 득시글거리는 딸네집이 더 편할 것이라는 말에 대답할 말이 없어서 씁쓸하게 웃고 말았다.

    

말 만드는 사람들이 유머로 지어낸 말인지 몰라도

아들네 집에 가서 냉장고도 열어보지 마라 며느리가 싫어한다.”

아들 좋아한다고 반찬 만들어 보내지 마라 그날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라는 말을 들을 때는 설마 그렇게 까지 하겠느냐 라고 웃자고 하는 농담으로 들었는데 오늘 택시기사의 말을 듣고는 세상이 참 많이 변해 간다고 느낀다.

    

난 옛날 사람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딸네 집에 갈 때 사돈댁의 기분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우선 한다. 딸네가 집을 샀다고 할 때도 사돈댁이 먼저 다녀간 후 내가 갔다. 딸이 시댁에 갔다 왔다는 소리를 들어야 우리 집에 오도록 허락 했다. 손자손녀의 입에서도 할아버지라는 말보다 외할아버지라는 말이 더 많이 나오는가에 신경을 쓰고 살아왔다.

    

우리부모님 세대는 아들네 집에 올 때는 의기양양했는데 딸네 집에 갈 때는 사돈의 눈치를 보는 세상을 사신 분들이다. 이제는 달라졌다. 부계사회에서 모계사회로 변하는 세상을 확실히 느끼고 산다. 아들보다 딸을 더 선호한다는 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남아선호사상도 이제 옛말임을 확실히 깨닫는다

    

이제 세상이 또 바뀌고 있다. 부계사회니 모계사회니 아들이 좋으니 딸이 좋으니 하는 말도 급속도로 무너지고 옛말이 되어간다. 우리 집. 아들네 집. 딸네 집으로 절반은 남남으로 여겨진다. 마음속에 장벽은 더 높아지고 한 솥밥을 코 박고 먹든 식구라는 개념은 희미해져 가는 속내를 느끼며 깜작 놀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