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공원의 돗자리 영화를 보며 격세지감을 느끼다

조왕래 2018. 12. 27. 15:20

공원의 돗자리 영화를 보며 격세지감을 느끼다

 

 

 

 

 

1950년도 후반부터 60년대 까지는 내가 살던 지방 소도시인 읍()소재지는 지역민의 문화수준을 높여준다고 여름밤에 큰길을 막아 특설무대를 꾸며 놓고 무료영화를 상영했다. 공설운동장도 없던 시절이니 많은 사람이 모이기 편한 곳이 도심지 큰길이었다. 자동차가 귀하던 시절이고 우회도로가 있으니 큰길을 막아도 시비 걸 사람은 없었다.

    

영화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드럼통위에 널판자를 올린 야외 특설 무대에서 권투시합도 하고 레슬링 시합도 보여줬다. 한번은 덩치가 큰 일본 레슬링 선수가 왔는데 우리나라 상대 선수가 무슨 사정으로 못 왔다. 심판을 보던 사람이 상대선수로 급조되어 경기를 했다. 과거에 레슬링 선수를 했다는 심판이었지만 덩치도 차이 나고 나이도 많아서 도저히 상대가 되지못했다. 그래도 구경 온 관중을 위해 열심히 던져지고 바닥을 뒹굴면서 일본선수에게 덤벼들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당시는 돗자리 같은 앉을 것이 없었다. 대부분 맨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구경했다. 처음에는 바지에 흙을 안 묻히려고 쪼그려 앉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리에 쥐가 난다. 너나 할 것 없이 바닥에 책상다리하고 앉아야 한다. 일어서면서 엉덩이를 툭툭 털면 끝이었다. 위생관념도 요즘만큼 철저하지도 않았던 시절이니 가능했다.

    

비가 온 다음날은( 물론 비가 오면 공연은 취소되었다.) 땅이 젖어있거나 물웅덩이가 있어서  종이나 볏짚이나 벽돌을 깔고 앉았다. 젖은 종이를 주머니에 넣어서 가져 갈 수도 없어서 그냥 버렸다. 길바닥이 지저분해지니 청소하는 분들이 짜증을 냈다. 요즘에 이런 공연을 했다가는 지역민들로부터 몰매를 맞을 것이다.     

 

요즘도 무료영화를 보여주는 곳이 있다. 강동구 천호동에 있는 천호공원에서는 돗자리 영화제를 한다. 길바닥에서 영화를 본 나이 많은 세대들에게 추억을 선물하고 여름 더위를 시원한 공원바람을 맞으며 식히라는 배려다. 무료로 상영하는 영화지만 아주 오래된 영화가 아니고 가족들이 함께 보아도 좋을 영화다예전에 영화필름을 영사기에 걸어 돌릴 때는 필름이 오래되면 화면이 비가 오는 것처럼 죽죽 세로줄이 그어지고 지지지 하는 잡음도 많았다. 화면이 흐린 것은 보통이고 중간에 필름이 끊어지기도 했다. 요즘이야 USB로 영화를 상영하니 언제나 새 영화처럼 깨끗하고 선명하다. 음향시설도 좋아 뒷자리에 앉아도 말소리가 또렷하다.

 

    

 

영화를 보려고 기를 쓰던 예전과는 격세지감(隔世之感)이 있다. 공원을 찾는 사람들은 목적이 다 다르다, 옆에서 영화상영을 하는데도 아랑곳없이 저마다 하고 싶은 활동을 한다. 젊은 층공원의 농구장에서 농구를 한다. 정식 농구 시합을 하는 것이 아니라 농구 골대 밑에서 서로 편을 짜서 수비와 공격을 번갈아 하는 길거리 농구다. 옆에서는 나이든 사람들은 배드민턴 경기가 한창이다. 나이로 몸이 둔해 점프 스파이크는 못하지만 엉거주춤한 자세로 잘 받아 넘긴다. 오랫동안 해서 훈련의 결과다.

 

    

 

일부의 사람들은 가족들과 함께 갖고 온 돗자리 위에서 음식을 먹는다. 공원에서는 불을 피울 수 없고 술을 먹을 수 없으며 담배를 피우지 못 하지만 조리가 다된 음식을 먹는 것 까지는 허용한다. 공원질서를 위해 21조의 순찰대를 조직하여 순회하면서 철저히 질서를 지키도록 단속한다. 예전에 술 먹고 고성 방가하는 사람은 아예 없다.

 

    

 

분수대가 있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짜여진 순서에 의해 형형색색의 다양한 물주기가 하늘로 치 솟고 음악이 흐른다. 보기에도 좋고 물보라를 날려 시원함을 더하지만 전기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가동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연인들이 분수대 주위를 서성이며 사랑의 대화를 주고받지만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지나치는 사람도 많다.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공짜영화만 보는 것도 대단한 호강이라고 여기던 과거가 불과 몇 십 년이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많이 달라졌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밤의 멋진 풍경이 많은 공원이다. 돗자리 영화가 내 취향에 맞지 않으면 슬그머니 일어나서 공원을 산책하는 것도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