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브로를 찾아서
사람이 사노라면 아름다운 꽃에 시선을 빼앗기기도 하고 멋진 이성에 마음 설레기도 한다. 아름다운 노래 소리나 목소리에도 귀를 쫑긋한 적은 있다. 그런데 단어 하나에 마음 뺏긴 적은 처음이다. ‘시나브로‘라는 단어다. 나로서는 참 생소한 단어다. 꼭 프랑스 말 같은 어감이 있다. 이 말의 뜻은 ’모르는 사이에 조금 씩 조금 씩‘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순수 우리말이다. 우리말의 ’야금야금‘또는 ’서서히‘ 하고 비슷한 의미지 싶다.
문장을 구성하는데 쓸 수 있는 비슷한 말은 여러 단어가 있지만 딱 맞는 말은 하나뿐이라고 한다. 절대적으로 딱 맞는 단어를 알아맞히려면 어려서부터 써오던 말이어야 한다. 말도 생명력이 있어서 태어나고 죽는다. 이미 죽어버린 고어(古語)는 아무리 우리말이라 하더라도 독자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버려야 한다. 100년 전의 소설을 원본 그대로 읽으면 난해한 부분이 많아 읽기도 이해하기도 어렵다. 독자를 위해 현대의 말로 고쳐서 출간을 한다. 사전 펴 놓고 소설을 읽을 수는 없다. 사극에 등장하는 말은 이미 우리시대에 맞는 말로 바꾼 것이다. 옛날 말이나 궁궐 말을 그 시대말로 하면 아무도 알아듣지 못한다. 아름다운 말을 찾아내고 변형시키고 창조하는 일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고 선두는 작가의 몫이다.
한동안 ‘시나브로’라는 단어가 쓰여 있는 책을 찾아 해맸다. 김용성의 ‘도둑일기’에 ‘바람은 불지 않았으나 낙엽이 시나브로 쌓이고’ 라는 문장이 있다. 김유정의 ‘두포전’에 ‘동리 사람들은 하나 둘 시나브로 없어지고 비는 쭉쭉 내립니다.’ 라는 문장도 찾았다. 또 하나 더 찾았다. 남상숙씨의 ’종소리‘ 라는 2018년 한국수필문학 1월호에 실린 글이다. ‘지축을 뒤 흔들 둣 땡땡 웅장한 소리로 울리다가 땡그랑땡그랑 졸린 듯 시나브로 잦아들었다.’
이렇게 ‘시나브로’라는 단어를 사용한 문장을 읽으면서도 아직 가슴에 그 독특한 의미가 확 와 닿지 않는다. 이 단어가 입에 익지 않은 너무 생소한 단어기 때문이다. 어딘가 나사가 덜 조여져서 덜컹하는 느낌을 받는다. 접해보지 않고 사용하지 않던 말이어서 밥 속의 모래알처럼 입안에서 맴돌며 삼켜지지 않는다.
말이 이국의 향수를 불러오는 것처럼 너무 아름다워도 배척받는다. 너무 예쁜 미인 옆에 앉으면 땡잡았다는 생각보다 괜히 불편해 진다. 테니스 동호회에 젊고 잘생기고 테니스 실력도 있는 K라는 새로운 인물이 들어왔다. 젊고 잘생겼는데 거기에 테니스마저 잘하니 금상첨화(錦上添花)인데 이것이 오히려 부담이 되어 더 가까이 가지 못하겠다. 예전부터 함께 운동하던 다소 늙고 보통으로 생기고 테니스 실력도 그저 그런 사람이 더 정겹게 느껴진다. 너무 똑똑한 사람이 질투를 받는 것처럼 말도 너무 고급스러우면 미움을 받는다.
‘시나브로’라는 단어도 독특한 어감 때문에 문장에 집어넣으면 돼지가 진주 목걸이 한 것처럼 어색하다. 입에 안 익어 어색한 말인지. 이미 쉬운 다른 단어로 대치되고 수명을 다한 말을 억지로 살려서 쓰려다보니 불협화음으로 들리는지 오늘도 이 단어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