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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손녀 이름이 가물가물

조왕래 2018. 1. 9. 14:09

 

 

노인이 돌아가시면 동네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처럼 지혜의 보고가 사라졌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살아있을 때 노인의 말에 귀를 기우리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먼저 살아 본 인생선배의 말씀에 귀기우리고 반면교사로 삼는 것을 나는 좋아한다.

    

올해 86세인 00’ 할아버지는 나와 치매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함께 하시는 분이다. 치매환자가 대부분 할아버지보다 나이가 적다. 형님이 동생들을 케어 하는 형상이다. 이분은 6.25사변 때 함경남도에서 피난을 내려왔는데 그때 나이가 19세였다고 한다. 19세라는 한창 때에 피난을 오다보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산처럼 쌓여있다. 고향땅을 밟아 보기 전에는 절대로 죽을 수가 없다고 하신다. 치매봉사활동을 열심히 하시는 이유도 건강관리에 있다. 명함에 함경남도 중앙도민회 지문위원이라는 직함을 새겨서 다니신다. 고향 사랑이 워낙 크다보니 고향 사람이 큰일을 당하면 부조금이나 축의금으로 몇 십 만원씩을 낸다. 그 바람에 매월 6백만 원씩 들어오는 건물 가게세도 아내 손에 넘어가는 경제동결을 당하고 아내에게 매일 용돈을 타서 쓰는 형편이 되었다고 억울해 한다.

    

올해를 마감하는 치매센터 월례회에 정신과의사인 센터장이 참석한 가운데 각자 한해를 보내는 소감 한마디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00’ 할아버지가 몸이 늙어감에 대해 안타까운 말씀을 하시는데 손자 손녀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 때 참 답답하다고 하신다. 손자 손녀를 보면 이름을 부르고 싶은데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아 그래 너 왔구나!’라고만 말해야 할 때 아! 나도 늙어가는구나 혹 나도 치매가 아닌가하고 겁이 덜컥 난다고 말씀하신다. 손자 손녀들이 할아버지가 자기 이름을 잊어버린데 대해 섭섭해 하는 눈치가 보인다고 말씀 하셨다.

    

정신과 의사인 센터장이 대답으로 절대 치매가 아니며 그 연세에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 정상이라고 위로의 말씀을 했다. 그리고 그럴 때를 대비해서 끊임없이 메모하고 적어야 하는 점을 강조 했다. 치매전문가이며 정신과 의사가 말씀 하시니 맞는 말이다. 노인의 필수품으로 메모장이 각광받을 참이다.

    

나는 00’ 할아버지께 이렇게 말씀 드렸다. ‘제 어머니도 여럿 자식을 두었는데 급하게 부를 때는 이름을 바꾸어 부르고는 아차 하고 다시 고쳐 부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손자 손녀에게 할아버지 상태를 를 미리 말씀해 두면 어떨까요.  즉 '할아버지가 이제 나이가 많아 깜빡 할 때가 있다. 그러니 앞으로는 할아버지를 보면 할아버지 저 00이가 왔어요. ‘하고 미리 이름을 말하게 하면 해결될 것 같습니다.’ 하고 말씀 드렸다.

    

친자식의 이름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데 한 다리가 먼 손자손녀의 이름을 다 기억한다는 것은 노인으로서는 어려운 일이다  노인과 대화를 나눌 때 어른을 공경한다고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지말고 기억이 가물거리는 부분에서 추임새처럼 한마디씩 거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