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초등학교 동창회의 총무를 강제적으로 떠맡게 되었다, 두 번째 총무를 맡게 된다. 총무는 회장을 보좌하여 회원의 연락과 회비징수와 관리업무를 담당한다. 몇 년 전에 총무를 맡아보니 동창회원들의 주소정리도 깔끔히 되어있지 않고 볼펜으로 찍찍 고쳐둔 것도 마음에 안 들었지만 무엇보다 아직 수정을 하지 않은 채로 방치된 주소가 있는 것이 문제였다. 바뀐 전화번호 정리도 미흡했다.
더구나 영수증 없이 돈이 지출된 것도 더러 있었고 회비지출 내역정리도 기재가 불충분했다. 아내는 딸의 도움을 받아 컴퓨터로 엑셀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깨끗이 장부를 만들고 주소 정리를 했다. 이 과정에서 전임총무와 서로 싫은 소리도 오갔다. 아내가 장부정리를 하면서 불충분한 것을 전임총무에게 꼬치꼬치 캐물었더니 나를 의심하느냐고 기분나빠하더라는 것이다. 전임총무 말이 전임총무로부터 얼마를 인계인수 받았다. 이렇게 한 다음부터 신임총무가 정리를 해가면 되지 왜 전임총무가 쓴 것을 따지느냐는 것이다. 회계나 부기를 제대로 배운 사람들이 아니고 양심적으로만 주먹구구식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이니 이해는 간다.
아내가 총무를 맡은 것을 참 잘 했다고 박수를 쳤다. 나이 들어가면서 외로워지는데 총무라는 직책을 빙자하여 여러 사람과 많은 대화를 하게 되고 동창들 길흉사에 쫓아다니다보면 건강에도 좋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반면 자칫하면 구설수에 오르고 욕을 얻어먹을까봐 걱정도 된다. 여자들은 남자들과 달라 돈 씀씀이에 예민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남자들은 자녀결혼에 50만 원 이라는 규정을 정하면 자녀가 둘이던 셋이던 결혼할 때마다 축의금 50만원씩을 주지만 여자들은 두 명 까지만 지급하고 세 번째는 지급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견 그럴듯하고 합리적인데 나이든 남자들의 정서로 이해하려니 머리가 아프다.
어느 여자들 모임에서 점심을 먹으며 맥주를 한두 잔씩 마신 모양이다. 남자들은 술을 마시던 안 마시던 무조건 1/n로 계산을 하는데 여자들은 나는 술을 안 마셨으니 밥값만 내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더치페이의 본질로 보면 맞는 말이지만 우리 같은 시니어의 남자 세계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그렇게 따질 것이면 모임은 왜하느냐는 반론부터 나온다. 일본에서는 술을 마셔도 몇 잔 마셨는가에 따라 잔 술잔 값까지 따져서 각자 부담액을 달리한다니 술 안 마셨다고 밥값만 내겠다는 사람이 너무 한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도 김영란법의 취지를 살려 곧 그렇게 되리라 본다. 총무가 이런 것을 모두 감안해서 돈을 걷으려면 아내가 머리깨나 아플 것이다.
초등학교 동창들처럼 빈부차이가 큰 모임이 없다. 반면 잘나도 잘난 척 하지 않고 못나도 기죽지 않는 모임이 또한 초등학교 동창회다. 여자들의 입방아에 아내가 마음의 상처를 받을 것은 확실하지만 우정이라는 고약을 발라 금방 치유될 것이다. 동창들을 아우르고 달래고 사정하면서 동창회주관 해외여행도 다녀오고 맛있는 음식 먹어보기 투어도 잘 해나가길 기대한다. ‘사는 게 뭐 별것 있나 욕 안 먹고 살면 되는 거지’ 하는 유행가 가사가 생각이 난다. 이왕 짊어진 짐이라면 웃으며 지고가야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