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전화기를 켜고 발신 번호를 본다. 그동안 전화통화를 자주하지 않던 먼 친척이다. 불길한 예감이 스쳐간다. 역시나 받아보니 집안 어른이 돌아가셨다는 부고 전화다. 어찌 불길한 예감은 이렇게 잘 들어맞는가! 예감이 귀신같이 맞아떨어지면 신통력이 있다고 기뻐해야 할 텐데 마음은 정반대로 우울해진다.
나이 들어 불길한 예감이 왜 잘 맞는가를 생각해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로 주위에 부음을 알릴만한 관계가 되는 사람이 많이 있다. 어릴 적에는 누가 돌아가셨다는 말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것 말고는 모두가 나와 관계없는 일이었다. 이웃집 어른이 돌아가시면 부모님이 문상 가시면 되는 일이니 나는 몰라도 되었고 알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나이 들어보니 대외 업무를 주관하던 부모라는 우산이 없어지고 나서부터는 모두가 내가 알아서 해야 될 일이다. 자연히 이웃이나 친척의 길흉사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밖에 없다.
두 번째로 안 해도 될 걱정을 스스로 만들어 한다. 경쟁이 심한 유치원에 입학 신청을 한 손녀의 합격여부에 할아버지가 괜히 신경을 쓴다. 내가 걱정을 하지 않아도 제 부모들이 알아서 할 텐데 한 다리 먼 내가 걱정을 더한다. 이야기책에 자주 나오는 이야기의 비유가 딱 들어맞는다. 옛날에 우산장수와 소금장수의 아들을 둔 할머니가 있었다. 비가 오면 소금장수 아들의 소금이 비에 젖어 녹아 버릴까봐 걱정을 하고 햇볕이 나면 우산장수 아들이 우산을 못 팔까봐 걱정을 한다는 이야기다. 걱정을 반대로 뒤집으면 기쁜 일이다. 비가 오면 우산장수 아들이 우산을 많이 팔아서 좋고 날이 맑으면 소금장수 아들이 소금을 수월하게 팔아서 좋다고 마음한번 고쳐먹으면 매일 매일이 즐거운 날이다. 나이 들면 나쁜 쪽으로 생각하고 나쁜 쪽에 신경을 더 쓴다.
세 번째로는 시대의 변화다 예전에는 나쁜 일이면 부모님께 적극적으로 숨겼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알게 되면 걱정하여 몸을 상한다고 집안에 모든 나쁜 일은 쉬쉬하고 숨겼다. 결국 나이든 사람이 나쁜 소리를 들을 기회를 인위적으로 차단했다. 부모님이 암에 걸려도 가족들만 모여서 병원비나 수술문제 등 걱정을 했으면 했지 어른인 당사자에게는 숨기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알까봐 절대 함구령이 내려졌다. 현재는 환자가 알아야 한다고 톡 까놓고 모든 이야기를 다한다. 그만큼 시대가 바뀌었다. 우리속담에 알면 병이라는 말이 있다. 알면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네 번째로는 살다보면 성공한 사례보다 실패한 경험이 더 많은 것이 세상이다. 실패의 경험이 많아서 반복된 학습 효과로 걱정이 많아졌다. 성공이라고는 0%에 불과한 일이 일어나는 기적 같은 일보다 100% 확실하던 일이 어긋나는 법이 더 많다. 그러다보니 학습이 되어 자연히 걱정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복권을 사지도 않고 ‘복권에 당첨되었어요.’와 같은 황당한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만사는 씨 뿌린 대로 거두고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 욕심을 줄이고 순리에 순응하려고 하니 마음이 편하다. 걱정을 미리 한다고 해결에 도움 될 일도 별로 없다. 그러려니 하고 좀 둔하게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