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는 ‘둔하다’라는 말에 대해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갖고 있다. 실제로 ‘저 사람은 둔해’라는 말과 ‘저 사람은 예민해.’라는 말의 의미는 천지 차이다. 예민한 사람이 성공할 것 같은데 아니란다. 성공한 사람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가 갖고 있는 재능의 바탕에는 반드시 좋은 의미의 둔감력(鈍感力)이 있다고 한다. 평소 나는 내가 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는데 둔한 사람이 성공한다니 눈이 번쩍 귀가 쫑긋했다.
성공을 거둔 사람들의 오늘을 사는 지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둔감력(The Power of Insensitivity)』이란 책은 오타나베 준이치라는 일본인 의사가 쓴 책이다. 둔한 사람이 강하다는 예를 이렇게 설명한다. A와B 두 사람이 동시에 모기에 물렸는데 A는 피부가 가려워 매우 긁고 피부는 곧 빨갛게 부어올랐다. 하지만 B는 모기를 쫓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한다. B가 둔한 피부를 갖고있지만 결국 B의 피부가 강한 것이다. 의과대학에서의 저자의 경험을 이야기 한다. 지도교수의 질타를 똑같이 받아도 예! 예! 하면서 별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사람이 결국 최고의 명의가 되더라는 이야기는 새겨들을만하다.
둔한 사람이 나쁜 일이 일어나도 걱정을 덜하니 잠도 잘 잔다. 그러니 건강하다. 둔한 사람이 스트레스를 덜 받아 암에도 잘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단체로 상한 음식을 먹었을 때 대부분 식중독 증세를 보여도 몇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간다. 둔감한 장(腸)을 가진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자랄 때 나쁜 환경에서 나쁜 음식을 먹어본 경험이 많아 이미 장이 둔감 훈련이 되어있기 때문이란다.
애인사이나 부부간에도 가벼운 배신은 눈감아주고 원만한 것은 이해하고 넘어가는 좀 둔한 사람이 예민해서 툭하면 배우자와 싸우는 사람보다 사랑을 잘 지켜서 결혼에 골인하는 경우도 많고 결혼 파탄의 계기도 적다고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오감(五感)인 눈(시각), 귀(청각), 코(후각), 혀(미각), 피부(촉각) 도 너무 좋으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눈이 나쁜 사람은 안경이나 콘텍트 렌즈를 끼어 향상시킬 수 있지만 너무 눈이 좋은 사람은 눈을 나쁘게 하는 방법이 없어 고민한다. 실제 눈이 너무 밝은 사람들이 ‘눈이 너무 잘 보여 피곤해요.’하는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청각도 귀가 나쁜 사람은 보청기를 끼면 되지만 너무 귀가 밝은 사람이 듣지 말아야 할 소리까지 듣게 되어 스트레스를 받는데도 청각을 나쁘게 하는 방법이 없다. 겨우 귀마개를 착용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귀마개를 해본 사람은 이게 얼마나 불편한지를 다 안다.
얼마 전 우리나라 간판 테니스선수인 정현선수와 외국선수의 시합을 중계방송으로 보았다. 정현선수도 잘하지만 외국선수도 출중한 기량을 갖고 있는 엘리트 선수였다. 처음에는 정현선수가 밀렸다. 점차 시간이 가면서 외국인 선수의 실수가 나오자 해설자의 해설이 재미있다. 해설자 말이 외국인 저 선수는 다혈질 선수여서 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스스로 흥분하여 게임을 망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점차 그렇게 흘러가더니 결국 정현선수가 이겼다. 차분하게 승패에 좀 둔했으면 정현선수가 고전했을 텐데 공 하나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 것이 결국 패인이었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니 노화의 하나로 오감이 둔해지는 것을 느낀다. 귀도 어두워지고 눈도 침침해진다. 어지간한 나쁜 냄새도 그냥 넘어간다. 이렇게 둔해지는 것이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된 것이 이 책을 읽고 나서 얻은 소득이다. 조그만 일에 일비일희 하지않고 대범하게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