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편한 자판기 커피를 자주 이용한다. 가벼운 가격과 편리성이다. 하지만 가끔은 돈만 꿀꺽 삼키고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거나 물만 나오거나 컵이 반듯하게 내려오지 않아 커피가 제대로 담기지 않아 반쯤만 담기는 황당한 경험을 해본다. 자판기 주위에 주인이 있어야 항의를 하던 하소연을 하던 해 볼 텐데 아무도 없다. 연락할 전화번호도 없어서 억울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쌍스러운 욕을 내 뱉는다. 돈으로 치면 몇 백 원 이지만 돈에 비해 허망한 기분에 사라진 돈이 더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성질 고약한 고객은 내 돈 내 놓으라고 자판기를 주먹으로 치거나 심지어 발길질을 해댄다. 매 맞는 자판기는 사실 죄가 없다.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주인의 잘못이다. 이런 불만 고객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환불해줄 의무가 자판기 주인에게 있어야 하는데 액수가 미미하다보니 그냥 흘러간다.
모든 자판기가 이렇게 관리되는 것은 아니다. 자판기를 제대로 관리하는 곳도 있어서 이를 소개하고 모든 자판기가 이렇게 관리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글을 쓴다. 제대로 관리되는 자판기는 이용하다가 불만이 있으면 기록을 남겨 달라는 종이와 볼펜까지 붙어있다. 직접 연락도 가능한 전화번호도 적혀있다. 기록을 남겨주면 확인하고 환불해 주겠다고 한다. 자판기 주인이 옆에 있다면 즉각 반환조치할 일이지만 그렇지 못하니 한 템포 늦추어 이렇게라도 고객의 불만사항을 수용하겠다는 자판기 주인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
동물원 울타리를 뛰쳐나온 호랑이나 사자에게 사람이 물려죽고 주인과 함께 산책하던 개가 지나가는 사람을 물어서 상해를 입힌 사고가 종종 발생된다. 사람에게 상해를 입혔다고 호랑이나 개를 죽이는 것은 돈을 먹고 커피를 내놓지 않는다고 자판기를 때려 부수는 것과 같다. 호랑이나 사자나 개는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사람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람에게 길들여졌다고 해도 야성이 있는 짐승이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끼면 주인도 공격한다. 이런 짐승이 잘못했다면 짐승이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관리할 의무가 주인에게 있으니 주인이 책임을 지고 벌을 받아야 한다.
짐승이 사람을 죽였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고 꼭 죽여야만 하는가는 생각해볼 문제다. 자동차가 사람을 치어 죽였다고 자동차를 법정에 세우고 죽이는 행동인 차량해체까지는 하지 않는다. 운전을 한 사람이 법정에 서고 벌을 받고 손해배상을 한다. 본능적으로 행동한 짐승에게 사람의 법을 적용하여 사살까지 하는 것은 지나치다. 종로에서 빰맞고 한강에 화풀이하는 격이요. 자판기를 발로차는 무식한 보복이다.
야식으로 통닭을 먹으면 통닭이 살이 찌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이 찐다는 광고를 보고 웃음이 나왔지만 참 맞는 말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야식에 먹는 통닭이 비만의 주범이 아니라 통닭을 먹는 사람이 비만의 범인이다. 모든 잘못은 기계나 짐승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관리 감독해야 할 사람에게 있다.
자판기가 언제나 제대로 성능을 유지하도록 관리를 해야 하지만 예기치 못한 고장으로 손님에게 불편을 줬다면 적극적으로 피해고객을 찾아서 환불해야 한다. 동물원의 짐승이 우리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이중삼중의 울타리를 만들고 아주 순한 애완견이라도 목줄은 물론 입마개까지 하여 선량한 피해자가 없도록 해야 한다. 화풀이를 기계나 짐승에게 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