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하는 즐거운 고민은 언제나 한다. 더구나 여러 사람이 함께 움직여야 할 때 음식 메뉴선택은 결정이 쉽지 않은 즐거운 골치 덩어리다. 예전에는 직장 같으면 직장상사가 메뉴를 정했다. 오늘 자장면하면 전부가 자장면으로 통일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상사가 자장면하고 외쳐도 여기저기서 짬봉이나 볶은 밥으로 되받아치는 친구들이 꼭 있는 자유로운 세상이다. 중국집으로 갈까 한식집으로 갈까 큰 그림 선택은 사무실 여직원에게 맡기는 것이 사무실 분위기를 위해서도 좋은 시대다.
휴일에 테니스 동호회 활동을 하고 뒤풀이 행사로 밥을 먹으러 간다. 어떤 음식점으로 가느냐가 늘 고민 아닌 고민이다. 내가 제일 연장자이니 나에게 의견을 묻는 경우가 많다. 나는 여성분이 정하라고 결정권을 넘긴다. 여성이 정해야 뒷말이 적다. 여성이 정한 음식점에 불만을 표했다가 반격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남자들은 어지간해서는 불만을 말하지 못한다.
음식을 먹으면서 맛이 없다거나 양이 너무 적다거나 비싸다는 등 불만이 터져 나오면 음식점을 추천한 사람이 머쓱해진다. 경험에 의하면 음식점을 추천한 남자회원은 불만소리를 들으면 대부분 죄지은 사람처럼 미안해하고 안절부절 못한다. 하지만 여성분은 그런 불만소리를 남편이 밥투정하는 정도로 치부하는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러버린다. 그런 점에서도 여성분이 음식점을 추천하는 것이 옳다.
가족들이 저녁외식을 할 때 음식메뉴를 정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집은 식구들 각자 좋아하는 음식점을 찾아가서 먹고 2차 자리에 가족들이 합석한다고도 하는데 나이든 우리가 보기에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싫어하는 음식도 다 사람이 먹도록 만든 것인데 가족의 화목을 위해 한 끼 정도는 썩 내키지 않는 음식도 먹어줄 수 있는 아량이 있어야 가족이라 말 할 수 있다.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의미라고 하지만 어려서부터 남들과 더불어 살고 융화하는 기본은 밥상머리 교육에서 나온다.
우리 집의 외식 메뉴는 전적으로 아내에게 일임을 한다. 내가 가장(家長)으로서 미리 자식들에게 꼼작 못하도록 못을 박아 놓았다. ‘너희들은 부모보다 젊으니 오늘 못 먹어도 앞으로 더 좋은 음식을 먹을 기회가 얼마든지 많다. 오늘은 엄마가 원하는 음식을 먹자.’ 라고 말하면 더 이상 아이들이 토를 달지 못했다. 사실 아내에게 메뉴 선택권을 넘겨주어도 아내 혼자 결정하지 못하고 가족들의 의견을 구하지만 결정의 책임은 아내가 갖는 구조다.
며느리는 외식보다는 짐에서 배달음식을 시켜먹거나 직접 해먹자고 주장을 한다. 이유로는 손자. 손녀들이 어려서 밖으로 나가려면 기저귀 등 피난민 짐 꾸리듯 준비를 하는 것이 번거롭기 때문이다. 물론 집에서 음식을 시켜먹어도 메뉴의 선택권은 며느리에게 준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용하게 알고 주문하고 함께 맛있게 먹어주는 것이 고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