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단위 신용협동조합에서 고객감사의 일환으로 일부 경비만 받고 출발하는 당일치기 단체 여행 날이었다. 버스가 지나가는 길옆에 아름다운 백사장이 펼쳐있자 일행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최 측에다가 좀 쉬어가자고 이구동성으로 간청을 했다. 어려운 부탁도 아니어서 주최 측에서 자유시간을 1시간을 줄 테니 바닷바람도 맞아보고 사진도 찍어보라고 했다.
버스가 출발시간이 다 되었는데 한쪽에서 웅성웅성하며 통 버스에 오르려하지 않는다. 이유인즉 할머니 한분이 보청기를 모래사장에서 잃어버렸는데 찾고 있다고 한다. 나는 당시만 해도 보청기 가격이 몇 만 원 정도 하는 줄로만 나는 알았다. 아니란다. 할머니가 잃어버린 보청기는 독일제고 가격이 5백 만 원이 넘고 귓속에 쏙 넣는 아주 작은 고막형 보청기라니 작아서 찾기가 어렵다. 그때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30여명의 일행이 할머니의 동선을 물어보고 그 주위를 이 잡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눈이 밝은 사람이 찾았고 버스는 출발할 수 있었다.
나이가 들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노화한다. 즉 오감이 둔화된다. 눈이 침침해지고 시력이 떨어져서 돋보기가 없으면 신문이나 책을 읽기가 어렵다. 자연스럽게 안경을 착용하지만 우리는 눈이 나빠 안경을 끼고 있는 사람은 별로 이상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그런데 나이 들어 노화현상이든 사고로 청력을 잃었던 간에 보청기를 끼고 있으면 고개를 갸우뚱한다. 지나치게 노인네 취급을 하고 내 말을 잘 못 알아들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을 한다. 내 주위에 청력이 떨어져도 남들의 이목이 두려워 또는 내가 늙었다는 것을 보이지 않으려고 보청기 착용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이유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귀에 걸어 밖에서도 보이는 큼지막한 귀걸이 보청기는 값이 저렴하지만 인기가 덜하다. 귓속에 넣어서 잘 보이지 않는 보청기를 선호하는데 보청기는 작을수록 가격이 비싸다. 이런 보청기는 가격이 몇 백 만 원 정도 하는데 이게 한 개의 값을 말한다고 하니 양쪽에 다 착용하면 두 배의 돈이 필요하다. 보청기가 작으니까 잘 잃어버린다. 귀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귀 바깥에 착용하는 귀걸이형 보청기가 좋다. 젊은이들도 음악을 들을 때 귀속에 쏙 들어가는 이어폰이 더 나쁘다는 것은 안다.
귀가 어두워져 세상의 모든 소리를 못 듣는 순간 세상과 단절된다. 우리는 남들과 말로서 의사소통을 대부분한다. 말을 하려면 우선 남의 말을 들어야 한다. 특히 늙어서 거동이 자유롭지 못하다면 시력보다 청력이 더 중요하다, 조물주도 사람이 죽을 때 가장 늦게까지 오감이 남아있게 한 것이 청력이라고 하니 귀의 소중함을 알만하다. 귀가 어두우니 이웃이나 자식과 소통이 어려워지고 점점 뒷방 늙은이로 들어앉는 불행의 첫걸음이다.
노화로 청력이 떨어진 사람에게 청력을 찾아주는 방법은 보청기뿐이다. 다행히 2015년 11월부터 보청기 구입 시 청각장애인에게 지급되는 보장구급여비가 기존 34만원에서 131만 원으로 대폭 상향조정된 것은 기쁜 일이다. 우리가 안경을 착용하는 것이 창피한 일이 아니듯 보청기를 착용하는 것도 신기한 일이 아니라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안경착용이 창피해서 콘텍트렌즈를 구입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지만 커다란 귀걸이형 보청기 착용이 창피해서 값비싼 비싼 귓속형 보청기를 착용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이제 보청기 착용은 더 이상 창피한 일이 아니다. 보청기는 안경처럼 삶의 한 도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