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친구 이야기

조왕래 2013. 11. 22. 13:50

  •  

 

친구의 결혼식장에서 또 다른 친구의 미망인을 만났다. 세상을 떠난 친구와는 전 직장의 동료였으며 나랑 가깝게 될 무렵에는 나는 총각이었으나 그 친구는 이미 결혼해서 신혼살림을 하고 있었는데도 둘이 죽이 잘 맞아 잘 돌아다녔다. 신혼집에 가서 밥도 여러 번 먹었다.

 

한번은 무슨 일로 어머니 증명사진이 필요했는데 시골에 계신 어머니에게 연락해서 증명사진을 찍고 우편으로 보내오고 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촉박했다. 그 친구가 자기 어머니 사진을 내게 주며 “야 너 엄마가 내 엄마고 내 엄마가 너 엄마인데 이 사진 써라. 회사에서 노인네 사진보고 너 엄마 아니다 라고 말 할 놈 없다.” 하긴 그렇다.

 

담당 부서에서 우리 엄마 얼굴을 어찌 알겠는가? 그 당시는 취직하려면 주민등록등본, 초본은 물론 신원증명원, 호적등본, 초본 등 관에서 발급해주는 모든 서류를 요구했다. 내 기억으로는 10여 가지가 넘던 시절이다. 그래도 자기 엄마 사진을 내게 주겠다는 아이디어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지금 돌이켜봐도 웃음이 나온다.

 

한번은 친구가 부부 싸움을 하고 아내에게 겁주기 위해 죽어버리겠다고 술을 엄청 먹고 인사불성이 되었다. 둘 부부가 신혼 때라 서로 지지 않으려고 기 싸움을 하고 있었고 남편은 술 먹고 죽겠다고 겁주고 아내는 속마음으로 "술 먹고 죽은 놈 없다. 맘대로 해봐라." 하였는데 술에 취해 횡설수설에 기절까지 하니 친구 부인이 다급하여 어떻게 도와달라고 내게 뛰어왔다.

 

나라고 별 수가 있나 택시를 불러 병원에 입원시켰다. 병원에서 위세척까지는 아니고 링거 주사를 놔주면서 혈액 속의 알코올 농도를 줄이는 방법을 쓰고 한나절을 넘겨 잠에서 깨어나 퇴원하는 걸로 마무리됐다. 이 싸움의 결과는 남편이 더 독한 놈으로 승리했다.

 

그 친구의 남동생을 내가 아는 공장에 취직시켜주기도 했다. 그 뒤 나는 직장을 옮겼지만 우정은 변함없이 유지되어 자주 만났다. 친구의 여동생이 남편감을 고를 때 남자가 나와 같은 직업이라고 적극적으로 결혼을 추진하기도 했다.


친구는 우리 동기 중에서도 덩치도 있고 성격도 원만하여 항시 무슨 일에나 선두주자로 우리를 리드해 나갔는데 불행하게도 암으로 저세상으로 갔다. 친구의 장례식이 끝나고는 친구네 집에 가지 않았다. 친구의 부인과는 자식들의 결혼식 등 큰일이 있을 때만 아주 드문드문 결혼식장에서 오늘처럼 만나서 자식 커가는 이야기를 듣고 고생한다는 위로의 말을 전했다.

 

친구 부인이 아주 현명한 분이어서 재산관리를 잘하고 아이들도 잘 자라 지금은 복 받아 화목하게 살고 있다. 친구의 제삿날 찾아가서 술잔이라도 건네고 싶은 마음이 불현듯 들 때가 있다. 나의 방문이 오히려 가족들의 울음바다로 만들 것 같아 가지 않았다. 저승에서 친구가 어찌 그리 술 한 잔 안 주냐고 너무 무정 타고 원망할지 모르지만 내 마음도 이해해 주리라 생각한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집에는 가훈이 있어야!  (0) 2013.11.26
빚과 저축  (0) 2013.11.22
소망도 준비가 필요하다.  (0) 2013.11.22
듣는것이 말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0) 2013.11.20
요양원에 가기 싫다.  (0) 2013.11.20